전력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9ㆍ15 정전 사태 같은 일이 다시 생기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여 '블랙아웃'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돈을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재정'이 명분이지만 무리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보신행정이다.
게다가 재정부는 내년도 수요관리 예산을 2,339억원으로 잡았다. 당초 올해 예산(504억원)보다 크게 늘어났지만 9월20일까지 수요관리로 쓴 돈이 3,319억원임을 감안하면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재정부의 '숫자 맞추기식' 예산 삭감에 각 부처의 핵심 사업조차 흔들리고 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고령화와 남북통일을 감안해 균형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사업에도 우선순위와 효용성이 있겠지만 무 잘리듯 떨어져나가는 예산에 산업정책과 안보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재정부가 삭감했다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되살아난 공중급유기 도입착수 예산을 놓고 비판이 많다. 재정부는 방위사업청이 요구한 공중급유기 도입 예산 467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독도와 이어도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재정부가 외교ㆍ안보적인 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은 공중급유기 없이는 독도상공에서 5~10분, F-15K는 30분 정도밖에 싸울 수 없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 공동 아이돌봄센터 예산 삭감과 경로당 난방비 사업지원 예산 554억원을 삭감한 재정부의 행동도 뒷말이 많다. e스포츠 분야 요구 예산 22억6,000만원 중 74%를 삭감한 것과 관련해서도 재정부에 서비스업 육성 의지가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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