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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양조장 르네상스를 꿈꾸며


전통술을 만드는 내게 사람들은 종종 우리나라 술 문화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술 문화의 특징은 가양주 문화라고 답한다. 봉건영주의 비호 아래 각 지방의 양조장에서 술을 빚던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집집이 술을 빚어 소비하는 자가 양조문화가 발달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경제력이 취약하고 도덕주의가 강했던 조선왕조의 금주정책 영향으로 산업적인 양조가 발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의 일상에서 술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접대하고 음식에 넣기도 하고 구급약으로 쓰기도 하고 남은 것은 식초를 만들어 쓰는 등 버릴 것 없이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조정에서 아무리 금주 엄명을 내려도 집집마다 때때로 술을 빚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인 특유의 창의력이 발휘돼 집집마다 골골마다 다양한 술들이 빚어져서 문헌에 전하는 술만도 600여종에 이르는 다채로운 가양주 문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적 주세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의 가양주문화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반면 정부가 면허하는 양조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헌에 나오는 술만 600여종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양조장 문화가 아예 없었던 것일까. 옛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통도사나 해인사 등 큰 사찰에서 대량으로 누룩을 만들고 술을 빚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마치 유럽의 오래된 수도원들에서 유명한 맥주와 와인과 독특한 약술들이 빚어졌던 것처럼 고려시대까지는 대규모의 사원양조장이 있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원양조장은 억불정책으로 많이 쇠퇴했지만 사찰의 승려들이 종이 같은 수공예품을 생산해 정부에 공납하도록 하는 관행에 따라 술도 함께 빚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시골의 작은 사찰에는 사원주 전통이 더러 남아 있고 몇 해 전 사찰양조의 기록을 찾으려고 큰 사찰들을 탐문하다가 양산 통도사 박물관 학예스님이 보여주는 양산군지에서 통도사 옆에 술병이 그려진 지도를 발견한 적도 있다. 흔히 대찰 인근에 발달한 사하촌은 경제력과 노동력에 힘입은 수공업 생산의 흔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17~18세기경부터 경제력이 발달하면서 마포나루 인근 공덕리(현재의 공덕동)에 소주양조장만 100여 호가 성업하는 등 양조장 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싹이 트기도 했다. 만약 일제 하에 도입된 식민지형 주세제도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 탓에 온 국토와 문화가 초토화 되지 않았다면 우리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찬란하고 다채로운 오래된 양조장과 술 문화를 누리며 세계에 큰소리 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여 년 전 양조사업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하나는 가양주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양조장 문화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포천 양조장과 서울 양재동에서 15년 전부터 가양주 교실을 운영하면서 '가훈 하나 가주 하나'라는 슬로건으로 가양주 문화가 되살아나길 고대했는데 요즘은 집에서 담가 먹는 가양주가 합법화돼 여러 곳에서 가양주 교실들이 성황을 이루고 가양주 동호회도 여럿 생겨서 직접 빚은 막걸리를 서로 자랑하는 모습도 심심하지 않게 목격하고는 한다. 또 양조장 문화 되살리기도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서울 올림픽 전후로 백 여 개의 민속주 양조장들이 생겨나고 재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붐으로 지난 100년간 줄어들기만 하던 양조장 수효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아직 마음을 놓기 이른 점도 없지 않다. 외국산 주류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대기업들이 전통술 사업에 뛰어 들면서 대부분 영세한 지방 양조장들이 속속 문을 닫는 일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산업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생태계의 건강성은 생태적 다양성으로 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면에서 전통술 산업 생태계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전통술과 전통술양조장의 다양성이 자칫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외국인 매료할 양조문화 생기길 그래서 나는 요즘 양조장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두 가지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각 지역에 농업과 농촌과 농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지역양조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와 대도시 속에 옛날처럼 손으로 빚어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네양조장들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하동과 단양, 청송, 고창, 나주, 완주 등에 세워진 지역 양조장들에서는 올해부터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지역만의 독특한 술이 빚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 작년 하반기부터는 서울 양재동, 신사동, 상계동, 마포 등 대도시 한 복판에서 매일매일 신선한 막걸리가 빚어지고 있다. 나는 요즘 전국 방방곡곡 수천 개 양조장들에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술이 빚어지고 대도시 한복판에서 장인의 손맛따라 각기 다른 막걸리가 빚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보고는 한다. 동네 술꾼들의 느긋한 소리가 골목을 따스하게 흐르는 가운데 외국 관광객들이 대도시 골목골목과 지방 골골을 누비며 우리의 술과 음식과 문화와 역사를 찾아 여행하는 모습들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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