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지난해 말 자존심을 구기며 신한은행에 선두자리를 내줬던 국민은행이 다시 1위로 올라섰다. 두 은행 간 경쟁이 점입가경인 가운데 기업은행도 중소기업대출을 발판 삼아 퇴직연금 시장에서 도약하고 있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국민은행이 5조6,534억원으로 제일 많았다. 지난해 말 처음으로 국민은행을 1,359억원 차로 따돌렸던 신한은행은 5조5,256억원으로 2위로 내려앉았다. 또 우리은행 4조8,006억원, 기업은행 3조4,640억원, 하나은행 2조3,998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DB), 확정기여(DC),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으로 구분된다.
기존 퇴직금과 유사한 DB형은 평균임금과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월별로 똑같은 금액을 받는 방식이다. 자산운용 이익과는 상관없기 때문에 임금상승률이 높아 물가 상승에 상대적으로 구애를 덜 받는 대기업이 선호하는 형태가 바로 DB형이다. 반면 DC형은 적립금의 운용성과에 따라 근로자의 퇴직급여액이 달라진다. 또 IRP형은 퇴직금을 이미 받은 개인이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거나 회사에 다닐 때 조금씩 퇴직금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엄밀히 보면 DB형의 경우 회사가 금융기관을 선택하는 형태라 기업영업이고 DC형과 IRP형은 근로자나 퇴직자가 금융기관을 고르는 만큼 개인영업 형태를 띤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이 강한 탓에 DC형과 IRP형의 비중이 각각 27%와 16%에 이른다.
반면 신한은행은 상대적으로 기업영업이 강해 DB형이 65%인 반면 DC형은 20%에 그친다.
이를 두고 두 은행 간 신경전도 치열하다. 신한은행은 "퇴직연금은 기본적으로 기업영업인 만큼 우리가 더 낫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은행은 "퇴직연금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노후 보장을 위한 것이라 개인영업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맞받아치는 형국이다.
고객 확보 전략에도 차이가 난다.
국민은행은 타 은행 대비 뛰어난 수익률을 내걸며 실적 배당 상품의 라인업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신한은 퇴직연금 가입 고객에게 프라이빗뱅킹(PB) 수준의 심도 깊은 컨설팅으로 고객을 유혹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에서 기업은행의 선전도 괄목할 만하다.
기업은행은 올해 퇴직연금 증가율이 16.7%에 달해 국민은행과 함께 1위를 기록했다.
순증 규모로도 국민은행 8,116억원, 신한은행 5,479억원에 이은 4,973억원으로, 우리은행(4,681억원) 등을 제쳤다. 이런 성과는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퇴직연금 사업의 인프라로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기업은행의 중기대출 비중은 22.6%(올 6월 말 잔액기준)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꺾기'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출 발생 시점 전후 1개월간 은행이 대출기업의 퇴직연금을 유치할 수 없도록 조치했지만 이 기간을 피해 퇴직연금을 가입시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기업은행이 최근 퇴직연금 시장에서 급성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 먹거리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퇴직연금은 장기거래상품인데다 유치 고객들에게 대출ㆍ카드ㆍ보험 등 추가 영업도 가능해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며 "앞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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