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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파이낸스 2015] 1부. 금융산업 판을 새로 짜라 <1> 짙어지는 위기의 그림자

100위권 핀테크기업 '0'… 투자 안하면 금융혁명이 재앙 될수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페이팔 본사 전경.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혁명이 불고 있지만 우리 금융회사들의 준비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너제이=신무경기자



편한 이자장사만 몰두… 신시장 강건너 불보듯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 3년만에 반토막 신세

스스로 기득권 버리고 새 먹거리 찾아나서야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16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글로벌 금융산업의 헤게모니가 다시 미국 월스트리트로 넘어가는 등 미국 중심의 금융산업 부흥이 관찰되고 있다"며 "지금처럼 변화의 소용돌이가 칠 때는 글로벌 금융회사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어려울수록 더 많은 씨앗을 뿌리겠다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금융산업은 기로에 섰다. 대격변기 앞에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국내 금융산업은 구조적 변신을 통해 재도약에 나설지, 아니면 과거 고성장시대에 통용됐던 부채자본주의에 안주하며 퇴화의 길을 걸을지 갈림길 앞에 섰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한창이던 5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KB·신한·우리·하나금융으로 대변되는 4대 금융지주의 틀은 국내 금융산업을 특징 짓는 확고부동한 원칙이었다. 이 틀은 깨졌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4대 금융지주의 틀은 3대 금융지주로 재편됐다. 온라인 채널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금융에서는 온라인뱅킹의 다음 버전인 모바일뱅킹이 핫이슈로 부상했고 대면접촉 비중이 높은 2금융에서는 다이렉트 시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핀테크(FinTech·금융기술)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화두로 부상했다.

불과 5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금융의 판도는 급변했다.

지형도는 급변했지만 수익성은 하락 일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1조8,000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012년 8조7,000억원, 2013년 3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금융연구원이 전망한 올해 순익은 5조6,900억원 수준인데 이 역시 2011년에 비해 반 토막에 불과하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우리는 한 곳도 없다.

판도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새 판에 맞는 새롭고 견고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황형준 보스턴컨설팅그룹 동아시아 보험부문 대표는 "국내 금융산업은 현재 커브시프트(기존 성장방식이 수명을 다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업계가 재편되는 시기)에 직면해 있다"며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디지털화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새로운 판이 시작됐다=잇따른 인수합병(M&A), 금융산업 자체에 내재됐던 지배구조 모순 등은 산업의 지형도를 확 바꿔놨다.



은행산업은 그 대변자격이다. 해체 수순을 밟은 우리은행이 열외로 빠지면서 은행산업은 '삼국지 시대'를 맞았다. 국민은행은 지리멸렬했던 지배구조 리스크를 떨쳐내고 고토회복을 선언했다. 새로운 리딩뱅크로 올라선 신한은행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외환은행과의 조기통합을 목전에 둔 하나은행은 턱밑까지 추격하기 시작했다.

보험산업은 다소 특이한 양태가 펼쳐지고 있다. 저금리에 대한 면역력이 엇갈리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은행과 보험 간 융복합(KB금융-LIG손보, 교보생명-우리은행) 시도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채널시장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특징이다. 보험상품 판매의 보조수단에 그쳤던 법인대리점(GA)은 제도권 보험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증권·카드·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판도 변화는 보다 비관적이다. 증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증권사가 인력감축을 단행했고 M&A 시장에 나온 매물도 수두룩하다. 수수료 인하조치로 먹거리를 빼앗긴 카드사들은 대출사업으로 진로를 틀었다. 안정자산인 주택담보대출을 은행에 빼앗긴 저축은행은 담보가치가 낮은 여신에 집중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판도 변화는 수익성 악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고민의 깊이를 키우고 있다.

대형 금융지주사 전략담당 임원은 "시장판도가 이처럼 격변하는 현상이 일찍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며 "이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용감축 외에 새로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최대 고민"이라고 말했다.

◇신(新)시장을 선점하라=새로운 시장의 등장은 '뉴 오더'의 시대가 왔음을 예고하는 또 다른 증거다.

위안화 금융허브 이슈는 향후 수십년간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상을 좌지우지할 빅 이슈다. 1996년 개설됐다가 4개월 만에 사라진 원·엔 직거래 시장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금융 선진국을 제치고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할지,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FTA도 타결돼 위안화 관련 금융거래가 증가될 것"이라면서 "유동성 부족으로 실패했던 원·엔 직거래 시장을 거울삼아 원화 국제화 등의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혁명이라 불리는 핀테크 시장은 또 다른 기회의 땅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8일 열린 금융심포지엄에서 "금융시장은 핀테크 혁명의 소용돌이에 들어섰으며 핀테크 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시장이 고속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금융산업의 대비는 한참 못 미친다. 중국의 1~2위 전자결제 기업인 알리페이와 텐페이는 이미 국내 영업을 시작했다. 대만의 개시플러스, 싱가포르의 유페이 역시 국내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반면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기업 중 세계 순위 100위 안에 드는 핀테크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금융산업 스스로 기득권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예대마진류'의 편한 사업에만 몰두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한 금융혁명은 기회가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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