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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김대송 당시 대신증권 대표이사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br>국제금융시장 생리몰라 禍 자초한 셈<br>금융시스템만 잘 갖췄어도 예방했을것<br>글로벌 시대에 '反외자 정서'는 곤란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김대송 당시 대신증권 대표이사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국제금융시장 생리몰라 禍 자초한 셈금융시스템만 잘 갖췄어도 예방했을것글로벌 시대에 '反외자 정서'는 곤란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전재호기자 Jeon@sed.co.kr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현재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진출하는데 일부 국가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글로벌 네트워크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로 나갔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처음에는 소규모 투자를 하되 시장 상황에 맞게 점차 투자액을 늘려야 한다.” 김대송(사진ㆍ59) 당시 대신증권 대표이사 전무(현 부회장)는 “해외 진출은 한국 자본시장의 성숙을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도 “해당 국가의 세제 문제, 환리스크 헤지, 현지기업 분석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제휴를 통한 우수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모증권사가 몇 년 전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 증권사와 자본합작을 했다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75년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증권맨. 외환위기의 여파로 대신증권이 생존의 기로에 섰던 98년 10월 대표이사 전무로 구원등판해 위기 탈출을 주도했다. 30년 넘게 증권업계를 지켜온 업계의 맏형으로 주변에서 차기 증권업협회 회장 출마를 권유하고 있지만 본인은 고사 중이다. 그는 “국내 자본시장이 덜 발달하고 금융인력의 실력이 낮았던 것도 외환위기 발생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 금융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졌더라면 외환위기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위기감에 대해서는 “98년 당시 재벌 계열의 증권사가 아니면 망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선 지점에서 고객들의 자금인출 사태가 겉잡을 수 없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오는데 정말 회사가 부도나나 싶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토로했다. -증시는 경제 전체의 촉수 같은 건데 외환위기가 오는 줄 몰랐나. ▦사실 명확한 징후를 포착하지는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불안감은 컸다. 외환위기 이전에 양재봉 명예회장이 위험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대신증권은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은 97년 초 한보를 시작으로 삼미ㆍ진로ㆍ뉴코아 등이 줄도산하고 재계 8위였던 기아그룹마저 자금난에 봉착했을 때였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이 필요했는데 97년부터 중소기업의 지급보증이 사실상 중단됐다. 발행하더라도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았다. 경상수지 적자에도 원ㆍ달러 환율은 절하되지 않는 기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것들이 IMF의 전주곡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주가 폭락으로 힘들었을 텐데. ▦89년 5만원대였던 대신증권 주가가 98년 5월에는 1,350원까지 떨어졌다. 98년 9월 말 기준으로 고려ㆍ동서증권의 인가가 취소되고 한남ㆍ산업ㆍ장은ㆍ동방페레그린증권은 영업정지를 당했다. 쌍용ㆍSK증권은 경영계획의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동서증권 부도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97년 말 극동건설그룹이 “어떤 계열사나 자산이라도 매각할 용의가 있다. 극동건설만은 살리겠다”며 자구안을 발표했는데 오히려 그룹의 위기를 확인시켜주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고객들의 자금인출 사태로 계열사인 동서증권이 부도 처리되면서 자금줄은 더 막혀버렸고 결국 그룹 전체가 붕괴됐다. -대신증권은 어땠나. 재벌 계열 증권사로 돈이 몰리면서 대신증권 같은 독립 증권사는 더 어려웠다. 당시로서는 대형사였던 동서ㆍ고려증권이 환매사태로 하루 아침에 부도나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구조조정을 하려고 해도 부동산ㆍ채권 등의 투자자산이 전혀 안 팔렸다. -객장 분위기가 살벌했을 것 같은데. ▦이른바 ‘깡통계좌(주식 가격이 융자금 이하로 떨어져 담보유지 비율이 100% 미만이 된 계좌)’는 문제점이 많아 90년 10월 모든 증권사가 강제로 정리해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단기간에 주가가 폭락하고 부도기업이 속출하면서 깡통성 계좌가 적지않게 발생했다. 당시 일확천금을 노리고 신용거래한 투자자들이 많았는데 주가가 조금만 빠져도 지렛대 효과 때문에 큰 손실이 났다. 객장에서 멱살잡이를 하는가 하면 고성이 오가고 난리였다. 일임매매나 전화주문도 많았는데 지금처럼 녹음하는 것도 아니어서 말썽이 나기도 했다. -자본시장 운영 부분에서 외환위기를 부른 정부의 결정적인 실책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책임은 금융기관ㆍ기업 등 모든 경제에 있지만 정부 실책이 크다. 우선 냉엄한 국제금융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또 동구권의 몰락과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재편, 세계 경제 통합화 등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비용ㆍ저효율’의 팽창일변도 정책을 고수했다는 게 문제였다. 관치금융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퇴출이 지연됐다. 마지막으로 당시 1,200원 정도가 적정환율이었는데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단기 해외차입으로 메우면서도 원화 고평가를 고수하다 보니 태국 등 동남아 금융위기에 곧바로 전염됐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외국자본의 음모론을 꼽고 있는데. ▦지나친 비약이다. 당시 외국인투자가들의 경우 포지션 규제 때문에 대규모 환투기를 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외환위기는 단기적으로 기업 부실이 커지자 금융기관이 부실화하면서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자금을 인출했기 때문이다. 국가 외채 규모는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보다 작았는데도 대외채무가 외국환은행에 집중되고 가용 외환보유고도 적다 보니 단기적인 ‘미스매칭’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들의 차입경영과 수익성 악화,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상승, 과도하게 중복된 설비투자 등이다. -SK가 파생상품 거래에서 대규모 손실을 본 데서 알 수 있듯 국내 자본시장의 미발달이나 금융인력의 실적부족 탓도 있는 것 같은데. ▦적지않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96년 말부터 외환위기 징후가 보였지만 이를 인지 및 대응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이 없었다. 외환위기는 적정한 금융 시스템만 있었다만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선진국에 뒤떨어지는 금융기관의 분석능력과 금융 시스템도 위기 발생의 한 원인이다. 한마디로 당시 금융시장이 국제 자본시장에 무지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ㆍ보험권, 종금사와 달리 증권계는 구조조정이 덜 돼 자본시장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이 있다.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재무구조가 튼튼했다. 또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증권전문 기업으로 소유구조가 명확해 비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금융 산업이 은행ㆍ보험ㆍ금융투자회사 등 3대 축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여 증권업계도 혁신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하지만 인위적인 합병은 업무가 중복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도 많다. 내부적인 효율성 제고, 전문가 영입 등을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가 우선순위라고 본다. 이후 대형사간 필요에 의해 M&A가 될 수는 있다. -증권사들이 최근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는데 외환위기 당시의 실패를 재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외환위기 당시 해외지점들이 전부 적자였다. 무분별하게 해외로 나갔다가 IMF 이후 일본을 제외하고 전부 다 철수했다. 지금도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진출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인력확보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진출은 한국 자본시장의 성숙을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 등을 통한 글로벌 경영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주주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 기업들의 단기 수익성 중시 등으로 기업의 성장동력이 후퇴하면서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칼 아이칸의 KT&G 경영권 위협에서 보듯 폐해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국내 자본시장이 선진화되면 부작용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는 주주자본주의 영향보다는 국내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고 환율 하락 등으로 영업환경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는 무조건 선’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반외자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데. ▦과거 19세기 구한말의 개방이 그랬듯 타의에 의한 개방에는 한계가 많다. 해외 금융자본에 대해 막연히 기대하면 결국 선진화된 금융기법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옥석을 가리지 못한 투자 유치는 론스타 사태에서 보듯 국부유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돈을 벌어간다고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는 개방지향형이다. 외국자본이 대규모 투자를 해 투자이익을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해야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아일랜드의 도약이나 중국의 성장동력도 외국자본에서 나오지 않는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외환위기도 우리 실력보다 자본시장을 너무 많이 여는 바람에 발생했는데. ▦일부 공감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에 가 있던 인력이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고 국내 증권사도 파생상품 등 다양한 투자수단을 통해 생존 모델을 만들고 있다. 오히려 국내 자본시장의 외국계 의존도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국내 증권사들도 질적ㆍ양적인 발전을 이룬 뒤 중국ㆍ인도ㆍ동남아 등에 진출해 외국 IB와 경쟁하며 과거 한국에서 외국계가 담당했던 역할을 할 수 있다. 입력시간 : 2007/02/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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