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광주에서 출생한 최 여사는 1929년 전남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11월3일 광주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일 시위에 참가했다. 당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나르며 투쟁했던 최 여사는 시위에서 많은 학생이 구속되자 이에 항의하고자 전교생이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 사건'을 주도했다. 최 여사는 모교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11월9일 구속학생 석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아무것도 쓰지 말고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내용의 호소문 150장을 작성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최 여사의 가족들은 해방 후 몇 차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주동자 인정이 안 되고 옥고를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유족은 광주시 부교육감을 지낸 이재민 순천향대 교수와 이재균(이재균치과 원장)씨 등 6남 1녀가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9시, 빈소 광주한국병원(쌍촌동) 장례식장. (062)380-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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