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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동성애 작가 장영진 인터뷰] 사선을 넘기까지

천신만고끝 中 한국대사관 갔지만 거부 당해

다시 北 돌아가 휴전선 철책넘어 남한땅으로

1996년 3월 20일 남청진역. 장영진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북한의 제일 끝에 위치한 온성에서 내린 그는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두만강을 넘었다.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아 물은 차가웠고, 불빛은 없어 앞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만강에 몸을 담근 지 2~3시간 만에 강을 건넜다. 이후 불빛을 쫓아 연길에 도착한 그는 북경행 열차를 타려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연길에서 우연히 알게 된 조선족 여인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무작정 북경행 열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중국 공안의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공안은 그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알 수 없는 곳에 그냥 내버려 둔 채로 떠났다. 혼자 남게 된 그는 무작정 걸었다. 그곳에서 우리 말을 하는 동포를 만나 도움을 받았고, 결국 꿈에 그리던 북경 한국대사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힘들게 대사관에 도착해 도움을 구했지만, 남한으로 보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이후 청도와 상해에 있는 영사관을 찾았지만, 남한으로 갈 방법은 없었다. 남한으로 갈 길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샀다. 그러다 우연히 머리와 몸통뿐인 젊은이가 커다란 붓을 입에 물고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사라진 줄 알았던 열정이 마음 속에서 되살아 났다. 휴전선을 넘기로 결심했다. 연길로 되돌아가 두만강을 건넜다.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간 뒤 고성 쪽으로 향하는 화물차에 올랐다. 원산을 지나 고성까지 나가면 금강산이고, 그 아래가 휴전선이었다. 원산 고성 간 도로는 하나뿐이었고, 초소는 8개나 됐다. 그 중 4차 초소인 두포초소는 증명서와 특별통행증이 없이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할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두포초소는 한쪽이 절벽이고 반대쪽은 바다였다. 3차 초소까지는 무사히 통과했다. 4차 초소에 이르러 군관이 붉은 깃발을 들어 화물차를 세웠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적재함 밑으로 들어간 후 화물차 뒷바퀴에서 머리를 내밀고 살피다 순식간에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8차 초소까지 통과하자 이윽고 1차 철책이 보였다. 탈북을 시도한 지 1년 1개월여만인 1997년 4월 26일 오후 2시 1차 철책에 도착했다. 대남방송이 들렸다. 조금 더 힘을 냈다. 미리 준비해 뒀던 쇠붙이로 금이 간 콘크리트 부분을 파낸 후 1차 철책을 통과했다. 2차 철책, 3차 철책도 통과했다. 3차 철책을 넘으니 비무장지대였다.

조금 더 가니 국군 철책이 보였다. "초소, 초소."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4월27일 새벽 3시께. 드디어 남한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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