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 대리전 된 '키코 재판'

피해 中企측, 노벨상 수상자 증인 신청에

은행선 MIT 경영대학원 교수 선정 '맞불'

엥글교수 "은행 폭리구조" vs 은행 "옵션값 자의적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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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 대리전 된 '키코 재판'

피해 中企측, 노벨상 수상자 증인 신청에은행선 MIT 경영대학원 교수 선정 '맞불'엥글교수 "은행 폭리구조" vs 은행 "옵션값 자의적 산정"

진영태기자 [e-mail]

중소업체 D사와 우리ㆍ외환은행 간 키코(KIKOㆍ통화옵션파생상품) 사건 재판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뜨거운 공방이 연출됐다.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변현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노벨경제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67)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엥글 교수는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영어로 "예스(YES)"라고 답한 뒤 증인선언을 읽어 내려갔다. 증인신문은 동시통역됐다.

엥글 교수는 키코상품 구조와 관련,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키코는 기업보다 은행의 기대이익이 훨씬 크게 설계된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엥글 교수는 "기업이 키코 상품으로 이득을 보려면 환율이 지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환율의 변동성이 커 이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며 "환헤지(위험 회피) 상품으로서는 오류(flaud)가 있다"고 말했다. 엥글 교수에 따르면 키코상품을 구성하고 있는 풋옵션 가치(기업의 기대이익)와 콜옵션 가치(은행의 기대이익)를 '헤스톤 옵션모형'으로 계산한 결과 은행은 기업이 받는 프리미엄 143억원보다 평균 4.6배 많은 656억원을 받도록 상품이 설계됐다는 것.

엥글 교수는 "지난 1990년대 이후로 파생상품의 가격을 예측하는 모형에서 국내 시중은행 측이 적용하고 있는 '블랙숄즈 모형'을 쓰는 선진국은 없다"며 "변동이 심한 금융시장에 적합한 가격측정 모형은 "헤스톤 옵션 모형"이라고 강조했다. 블랙숄즈 모형은 특정 상품이 정규분포를 따르고 일정한 흐름을 보이는 상품에 적용하는 것으로 비정규 분포를 따르는 현행 파생상품은 헤스톤 옵션 모형이 적합하다는 게 엥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키코 가입으로 기업이 입은 누적 손실은 이론적인 것보다 훨씬 크며 이는 곧 은행의 이익으로 직결됐다"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 도입된 이 상품이 한결같이 기업에만 피해를 줬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엥글 교수는 다른 4명의 국내외 파생상품 전문가와 함께 3월부터 9개월간에 걸쳐 D사 등 17개 수출 중소기업들의 피해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증거자료로 1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금융투자 예측 분야의 권위자인 엥글 교수는 통계분석 수단의 개선을 통해 미래 예측과 리스트 평가를 위한 새 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엥글 교수가 국내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은행의 키코상품으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증인으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 같은 엥글 교수의 주장에 대해 피고 측인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은 "변동성 값을 자의적으로 추정해 옵션 가격을 산정했고 통화스와프 금리가 아닌 국내 원화 거래 금리를 사용하는 등 분석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재판 내내 열띤 공방을 주고받았다. 은행 측 변호인은 "키코상품은 미국에서 합법으로 인정 받았고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도 키코 약관이 불공정하지 않다고 결정했다"며 엥글 교수의 주장에 정면 부인했다.

특히 은행 측 변호인은 "(엥글 교수의 분석보고서는) 은행의 수익을 실제보다 과장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옵션가격을 산정함으로써 터무니없이 높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옵션 가격 산정의 근거 데이터에 관해서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도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은행 측은 이와 함께 기업측의 분석보고서상 옵션 가격 산정의 근거 데이터에 대해 명확히 밝히도록 요구하고 스티븐 로스 미 매사추세츠공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반격 채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국내 키코 사건을 놓고 기업과 은행 간 싸움이 세계적인 석학의 대결로 더욱 관심을 모으게 됐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