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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계산기기업 쌍벽 '엇갈린 표정'

샤프, 사업다각화 실패 본사까지 매각

카시오, 시계시장에 승부 걸어 승승장구

진공관식 계산기가 상업제품으로 출시된 것은 지난 1962년 영국에서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일본이 뒤를 따르며 '전자입국'의 기초를 다졌다. 전자업체 샤프가 주인공이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카시오가 끈질기게 도전했지만 샤프는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사정은 바뀌었다. 카시오가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반면 샤프의 몰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계산기 분야의 쌍벽이던 샤프와 카시오의 명암이 엇갈렸다고 보도했다. 주력사업을 시계 분야로 돌리며 선택과 집중을 했던 카시오는 우량기업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샤프는 사업다각화에 실패해 무너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1960년대만 해도 사세는 달랐다. 1964년 샤프 창업자 하야카와 도쿠지 사장은 일본에서 처음 트랜지스터를 만든 고베공업 전문 기술자 출신인 사사키 다다시를 영입했는데 그것이 히트를 했다. 사사키가 두 해 뒤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IC) 기반의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3년 뒤 그는 한층 더 정밀해진 기술로 세계 최초로 대규모집적회로(LSI) 기반의 계산기까지 만들어냈다.

후발주자였던 카시오는 가격파괴로 맞섰다. 1972년 1만2,800엔에 '카시오 미니'를 내놓은 것이다. 샤프도 맞불을 놓았다. 이듬해 전력소비를 기존보다 줄인 액정형 계산기를 출시했으며 1976년에는 태양전지를 사용한 계산기를 내놓아 주목받았다. 카시오가 저가로 승부를 걸자 프리미엄급 첨단기술 제품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셈이다.

앞선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샤프의 전략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3대 사장인 쓰지 하루오는 1986년 6월 취임 이후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개발에 불을 붙였다. 이런 노력이 쌓여 1999년 20인치 LCD TV가 발매되자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에 브라운관을 대체하는 LCD TV시대가 본격화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LCD에 대한 기술적 자신감은 패착이 됐다. 5대 사장인 가타야마 미키오가 "액정 다음에도 액정"이라고 주창하며 고화질 제품 개발에 나섰으나 한국 등의 경쟁사가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샤프의 시장 주도권이 약해진 것이다. LG전자 등은 기존 LCD의 뒤를 이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카시오는 계산기 등에만 집착하지 않고 해당 기술 등을 바탕으로 시계 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 이를 통해 카시오가 내놓은 디지털 손목시계는 대표적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카시오는 오는 2016년 3월 결산 기준으로 연간 800만개의 시계 출하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당기순이익이 연결재무제표 기준 사상 최대인 330억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샤프는 2015년도 3월 결산으로 2,223억엔의 적자를 냈다. 샤프의 7대 사장인 다카하시 고조 사장은 5월 본사매각 방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3,500명에 달하는 희망퇴직 추진계획도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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