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이든 사극이든 우리 자신부터가 사실에 충실해야지, 그렇지 못하고서 어찌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날조에 분개할 수 있겠는가?" 책 서문에 씌어진 저자의 말부터 심상치 않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팩션'(fact+fiction: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 혹은 드라마)의 역사 왜곡에 대한 작가의 쓴소리이다. 저자는 MBC 인기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이 사랑한 여인 소서노가 처녀로 나온 것은 명백하게 사실 왜곡이라고 말한다. 소서노는 주몽을 만났을 당시 두 아들이 딸린 과부였기 때문. SBS 드라마 '연개소문'도 마찬가지다. 진평왕 28년에 세상을 떠난 신라 황실의 권력자 미실이 진평왕 35년에도 버젓이 살아서 등장한 것. 신문 기자 출신인 저자는 논리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료를 고증해 드라마의 과오를 책에서 바로잡는다. 책은 소서노, 미실, 평강공주 등 12명의 범상치 않은 여인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뤘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팩션과 달리 1인칭 독백체 형식의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 여인들은 사랑과 질투, 배신과 음모 등 드라마틱한 자신의 삶을 각자 독백하듯이 독자들에게 털어놓는다. 책의 매력 중 하나는 여인들이 사용하는 아름답고 정감있는 단어들이다. 이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고유어를 사용했기 때문. 기존의 역사소설에서 남발된 한자어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돌욤질(말달리기), 가시아바지(장인), 아리수(한강) 등 순우리말이 메웠다.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역사를 뒤틀어 놓은 일부 '팩션'들에 비해 확실히 비교우위를 지닌 책이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가볍지만 않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