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서 빈 몸으로 내려와 굶기를 밥 먹듯 하며 모은 돈이라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써줘요. 연세대에서 좋은 학생들을 위해 쓸 수 있다니 힘들게 모은 보람이 있어요."
흰 모시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구순의 김순전 할머니가 지난달 14일 연세대 정갑영 총장실을 찾았다. 정정하고 한 치의 주저 없이 "제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달라"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김 할머니가 연세대에 유증(遺贈ㆍ유언에 의해 유산을 무상으로 증여함)한 재산은 서울 중곡동 자택과 숭인동ㆍ능동ㆍ공릉동 등에 소재한 주택ㆍ상가 등 부동산 4건의 소유지분과 예금 등 100억원대. 연세대는 지난달 말 소유권 이전 등 등기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김 할머니는 100억대의 재산을 모으기까지 누구보다도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 중 고향인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을 떠나온 할머니 가족에게는 이불 한 채밖에 없었다. 피난 끝에 빈손으로 정착한 낯선 서울에서 남편과 슬하의 아들을 건사한다는 것은 여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후암동에서 동대문까지 버스로 네다섯 정거장의 거리를 매일 걸어다녔어요. 배가 고프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렇게 60여년 동안 아끼고 또 아껴서 모은 재산이지만 할머니는 전혀 아까워하거나 기부를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김 할머니는 "우리 식구들은 먹고살 걱정은 없다"면서 "저는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어려운 아이들을 뽑아 장학금 줘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주기를 부탁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연세대는 지난달 말 할머니를 세브란스병원으로 초청,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새 보청기를 선물했다. 또한 김 할머니의 뜻에 따라 그의 사후 장례를 주관하고 할머니 이름을 딴 '김순전 장학기금'을 운영할 계획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