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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왼쪽과 오른쪽

유치원과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에 입학해 길을 걸을 때는 항상 왼쪽으로 다녀야 한다고 맨 처음 배웠다. 심지어 ‘좌측통행’ 문제는 철수와 영희가 걸어가는 그림과 함께 초등학교 사회시험에까지 나왔던 것 같다. 실제 생활에 별로 도움이 된 적은 없지만 복도나 길거리, 지하철 계단 바닥에도 납작하게 붙어 있던 ‘좌측통행’ 문구는 문화인의 에티켓과 질서유지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어린 삶의 일상을 강요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왼쪽’ 길은 그냥 당연히 가야 하는 방향인 줄 알았다. 커서야 알게 된 왼쪽이 갖는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가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어쩌다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왼손으로 글자를 쓰려고 하면 어머니는 꽤 진지한 얼굴로 ‘왼손잡이는 사회생활하는 데 불편할 뿐더러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며 오른손으로 먹고 쓸 것을 굳이 강요하곤 했다. 이때 ‘왼쪽’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은 다분히 오른쪽보다 열등하고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후 어찌어찌해 들어간 대학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방향과 위치에 이념의 색깔이 입혀질 수 있으며 또한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방향성에 대해 유난히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좌우개념에 더욱 민감한지도 모른다. 최근 정치권에는 당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며 진보와 보수의 허울을 뒤집어쓴 채 때 아닌 좌우이념 논쟁이 뜨겁다. 열린우리당과 한라나당은 잇따라 연찬회를 갖고 ‘왼쪽으로 가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오른쪽을 더욱더 고수해야 한다’는 등 좌우 이동을 둘러싼 내부갈등을 빚고 있다. 한 켠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클릭 옮겨야 앞으로 20~30년 동안 집권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발 떼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영영 외면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방향 수정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밥을 먹을 때 혹은 글을 쓸 때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정치권의 좌우이념 논쟁 또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상에 충실한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좌우를 둘러싼 이념논쟁은 소모적이고 진부하다 못해 ‘그게 직업인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말장난’으로 비칠 뿐이다. 이런 좌우이념 논쟁이야말로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며 서로를 헐뜯던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정쟁과 결코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현재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이지 우리에게 맞는 정치체제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처럼 왼손이 됐든 오른손이 됐든 밥만 배불리 잘 먹을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 대다수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군부독재의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항거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일부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이념은 삶의 중요한 화두로 목숨 걸고 집착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국제경제와 정치상황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더이상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 출범 후 지역간의 갈등을 넘어 세대간의 갈등까지 나타나 온 사회가 서먹서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데 이제 구시대적인 이념문제로 우리 사회가 또다시 서로를 곁눈질하며 지낼까 두렵다. 이러다가 앞으로 남은 참여정부 4년 동안 ‘얻은 것은 실망이요 잃은 것은 민생’이 될까 걱정스럽다. 때마침 전윤철 감사원장도 더이상 못 참고 보수든 진보든 밀어닥치는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가 중요한 상황인 만큼 지금이 보수니 진보니 이데올로기 논쟁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라고 일갈했다. TV토론회만 나오면 국민을 등에 업고 침 튀기며 이념논쟁 벌이는 정치인들은 한번쯤 진지하게 새겨들을 일이다. /정보산업부장 박민수 mins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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