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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집단소송' 시대] <1> "시행착오를 줄여라"

'과거분식 고해성사' 후폭풍이 무섭다<br>기업 신뢰도 추락·금융권 대출회수등 우려<br>분식 해소땐 가본잠식 이어져 퇴출 위험도<br>회계법인 존폐 걸려있어 상담할 곳도 없어


사회 시스템의 강제적 변화를 요구하는 증권집단소송제 시대가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기업의 입장에선 집단소송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당장 경영의 우선순위를 뒤바꾸지 않을 수 없다. 집단소송의 상대자인 일반 주주들은 주주들대로 바뀐 시대에 어울리는 보다 강도높은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할 것이고, 이를 지도감독하는 증권당국으로서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얼마나 무리없이 좁혀가느냐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각각의 이해집단이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잔뜩 숨을 죽인 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단소송 시대의 원년'을 맞아 총 5회 시리즈로 집중 진단해본다. “국회가 증권집단소송의 폭발력을 인정해 과거분식을 일정 기간 소송대상에서 배제하는 ‘과거분식 소송유예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지만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죠.”(대기업 S사 부사장) “회사 규모가 작다고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털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코스닥 등록기업 I사 사장) 올해부터 시작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를 놓고 기업들은 지금 '오류수정을 통해 분식을 고백하고 뭇매를 맞느냐' 아니면 '분식을 숨기고 갈 때까지 가느냐'의 기로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증권당국ㆍ회계법인ㆍ일반투자자 등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연결된 각 부문에서 올해 처음 시작하는 집단소송의 파장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있다. 박천웅 모건스탠리 상무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한 국가는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높고 GDP(국내총생산)대비 시가총액도 크다”며 “집단소송제가 회계부정ㆍ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고, 증시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집단소송 도입의 시행착오'를 우려하고 있다. 설사 과거분식에 대해 오류수정을 허용해준다 해도 정상궤도를 찾기까지는 '오류수정 즉시' 기업 신뢰도 추락과 금융권 대출회수라는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추지 않고있다. ◇“누구나 덮고싶은 과거는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대표는 “지난 30년의 경영상황을 되돌아보면 기업규모가 크고 오래된 기업은 분식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이익규모가 컸던 기업은 분식을 정리했겠지만, 순익규모가 적은 곳은 분식의 흔적을 다 지우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이 최근 226개 기업을 대상으로 회계분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경영 악화에 따른 신인도 하락방지(31.5%)'와 '원활한 자금조달 및 차입비용 감소(19.4%)'를 위해 분식을 행했다고 실토했다. 이 설문결과에는 한국의 풍토에서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알면서도 편법과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크고 작은 분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 규모와 업력에 비해 순익규모가 크지 않았던 기업들의 경우 십중팔구는 분식회계를 다 털어내지 못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상궤도 진입 해법’상담할 곳 없다 기업들은 결산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홀로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타 회계감리 사항들은 상담대상이라도 있지만 과거분식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상담하기 힘들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한 회계법인 대표는 “기업들은 과거분식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회계법인과 어떤 논의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집단소송은 기업의 생존 뿐만 아니라 회계법인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만일 알게 된다면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심지어 “미국의 경우 1,000달러만 주면 파파라치들이 건수를 만들어온다”며 “기업이 집단소송에 대해 엄살을 떠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기업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근본 취지를 되살펴야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당초 당정 합의안에 따라 과거분식에 대해 2년간 유예한다 해도 기업들로서는 오류조정을 통해 분식 규모를 한꺼번에 털어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분식 해소가 곧 바로 자본잠식으로 이어질 경우 자칫 자본시장에서 퇴출될 위험도 크다”며 “시장의 충격과 오류수정 마감시한 사이에서 경영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연착륙방안을 어떻게 찾느냐가 지금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 지난해말 “정부가 집단소송을 도입하려는 것은 결코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정우 서울시립대 교수 역시 “과거분식은 지난 20~30년간 이뤄진 경제성장의 부산물로 기업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좆?측면이 있다”고 설파했다. 올해 첫발을 내딛은 '집단소송제'가 한국의 토양에 무리없이 착근하려면 도입 취지에 보다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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