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던 이세돌은 일단 백30으로 몰았다. 흑이 받아주면 그 자체로 활용이며 흑이 받지 않고 달리 두면 그때 가서 해법을 찾을 요량이었다. "마음이 결정되지 않을 때는 이런 식으로 공을 상대방에게 슬쩍 넘겨 버리는 것이 승부의 한 요령이지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나서 내 행마의 필연성을 찾겠다는 것입니다."(윤현석) 결국 흑은 요처인 31에 연결하고 백은 32로 따내는 바둑이 되었다. 다음 수인 흑33이 준엄했다. 시에허는 백더러 상변 흑 6점을 잡아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흑39에 백이 40으로 참고도1의 백1에 잡으면 흑돌 6점은 떨어진다. 그러나 흑2, 4로 봉쇄되면 백이 대세를 잃는다. 실전보의 백40은 역으로 흑더러 어서 상변을 살리라고 부추긴 수. 흑이 참고도2의 흑1로 두면 백은 미련없이 백2로 뻗어 숨을 돌릴 것이다. 흑41로 악착같이 백더러 상변을 잡아가라고 강요하자 이세돌은 역시 안 잡겠다고 백42로 꼬부린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철저히 이용당하는 수모는 당하지 않겠다는 이세돌이다. 그제서야 시에허는 못이기는 체하며 흑43으로 상변을 살렸다. "재미있는 장면이네. 서로 날 잡아잡수 하고 버티다니."(필자) "재미있다니요. 백이 일방적으로 당한 형태예요. 백의 고전입니다."(윤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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