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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지국가시대 재정정책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정책은 속 빈 강정만도 못하다. 그래서 2014년 예산안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결론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공약가계부를 통해 정부는 향후 5년간 134조8,000억원을 세입 확충(50조7,000억원)과 세출 절감(84조1,000억원)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2014년 한 해에만 17조4,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사회간접자본(SOC) 등 재량 지출에 대한 축소는 물론 적극적인 증세 전략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2014년 예산안의 중점이 경제 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모아지면서 지역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반면에 복지공약은 재원 부족을 빌미로 줄줄이 후퇴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과 기초노령연금, 보육 및 양육수당 등의 복지예산은 공약가계부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더욱이 대학생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약 4조원의 국가장학금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4,000억원만을 증액했으며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11조8,000억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도 재정 지원 일자리와 실업소득 유지에 집중되고 청년층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세입확충 없인 내년 적자확대 불가피

이와 같이 복지공약이 후퇴한 이유는 정부가 여전히 '증세 없는 복지'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와 비과세감면제도의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2014년 세수 증가분은 8조1,000억원에 그쳤다. 그마저도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에 집중되고 법인세는 단지 1,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세출 절감 노력이 부진한 상태에서 적극적인 세입 확충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2014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5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9%를 밑돌 경우 재정수지 적자 폭과 국가채무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적극적 증세 조치 없이 복지공약을 이행하려 할 경우 자칫 나라 빚의 감축을 이유로 공기업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할 수도 있다.



8월 '2013년 세법개정안'에서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의 소득세와 일반소비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낮고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은 높기 때문에 소득 및 소비과세의 비중을 높이고 법인과 재산과세는 성장 친화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지난달 3자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의 방식과 관련해 고소득층의 부담을 늘리되 법인세율의 인상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나타냈으며 "법인세를 높이지 않는 게 소신이다"라고 언급했다.

분배ㆍ성장 고려 기업과세 재설계해야

그러나 법인세율이 투자와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 부담 정도는 OECD 회원국의 평균 수준이며 고용주의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총조세 비용은 평균을 크게 밑돈다. 특히 비과세 감면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화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대기업에 대한 증세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1970년대의 고도 성장률을 달성하기 어렵다. 선진국형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이윤주도형 성장체제는 적합하지 않다. 성장의 결실이 사회구성원에게 고루 분배되는 소득주도형 성장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경기 침체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복지제도의 확충을 억제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을 특징으로 하는 개발연대 시대의 재정정책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국가 시대의 재정정책이다. 2014년 예산안은 여전히 개발연대 시대의 사고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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