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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매미 예찬


울음으로 꽉 찬 몸을 부르르 떠는 작지만 요란한 매미에도 숨은 미덕이 있다. 옛 선비들은 관(冠)의 끈이 늘어진 머리를 갖고 있어 문(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 살아 청(淸)이 있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 있고,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이 있고, 철 맞춰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신(信)이 있어 매미를 군자의 오덕(五德)을 갖춘 귀한 미물로 여겼다.

여름 한 철 지상에서의 짧은 생을 살기 위해 7년 이상의 긴 세월을 자승자박의 지하 유배지에서 견디는 은수자(隱修者). 울음소리 자체가 제 이름이 된 생태계 최고의 단음(單音) 명창. 매애에앰, 매에앰, 맴,맴,맴….

오랜 기다림·짧은 절정… 인생 축소판

'여름이 뜨거워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안도현 '사랑')란 시구처럼 더위를 맹렬히 달궜던 매미 소리는 절박한 갈애의 신호다. 지상에서의 2주 동안 짝짓기를 해야 하기에 매미는 더 필사적이다.

그러니 매미의 간절한 울음은 생의 찬란한 절정을 체화한다. '저것이 온살을 부벼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라면/ 못견디게 만나/ 한몸으로 이레나 열흘쯤을 울고/ 어두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대로 절정이다'(박영근 '절정')

절정의 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극단에 치달은 생의 꼭짓점이자 곧 가파르게 곤두박질칠 소멸의 시발점이다. 생성과 소멸의 극적 전환을 매미만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물도 없다.

매미 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있다. 매미들이 하나둘 미련 없이 생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나브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질게 울던 매미가 지상으로 추락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개를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허망하다. 죽어가는 매미들이 거친 바닥을 온몸으로 비비며 추는 원무, 춤추는 죽음! 이맘때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오랫동안 묵새겨온 생의 비애를 울음으로 모두 쏟아낸 후 땅 위를 뒹구는 푸석푸석한 매미의 주검에 가닿는다. '한 여름내 울음소리 커졌다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너는/ 햇빛같은 날개, 바람같은 몸피를/ 씨앗처럼 훌쩍 땅에 떨구리라'(이나명 '매미')

뜻밖에도 시인은 매미의 시신을 씨앗에 비유한다. 그렇다. 매미의 죽음은 새 생명 탄생과 연동된다. 암컷 매미는 나뭇가지에 알을 슬어 넣고 죽는데 수개월 후 알이 부화하면 나무 속에 들어 있던 유충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매미의 독특한 생리다.

매미의 장렬한 추락은 곧 자신의 씨앗(유충)이 땅 속으로 하강하는 것을 미리 재현하는 최후의 제사 의식으로 읽힌다. 매미의 주검은 인간이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준엄한 인식을 겸허히 깨닫게 한다. 인간은 한없이 욕망하고 부단히 그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지만 정작 세월이 흐를수록 내면은 텅텅 비어가고 있지 않은가.

"낡은 가치에 함몰되지 말라" 일깨워

그러나 이 결여의 허기와 실존적 공허감 속에서 비로소 '기지(旣知)의 나'를 반성하고 '미지(未知)의 나'를 출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죽은 매미의 허물이 자아 성찰과 갱신의 모태가 된다는 역발상에 이르니 다시 매미의 한살이를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매미는 철학적 곤충이다.

오늘 아침 방충망에 달라붙은 참매미 한 마리가 나를 깨운다. 이 불청객의 외침은 기성의 낡은 가치에 함몰된 아둔한 정신을 각성시키는 내면의 경고, 즉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daimonion)으로 들린다. 공부 길에 귀이천목(貴耳賤目ㆍ먼 데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 것을 천하게 여김)하라는 따끔한 죽비 소리, 맴맴 탁탁! 소리에도 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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