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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제나 오시는 부처님


28일은 불교계의 축제일인 석가탄신일이다. 굳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과거형으로 표현하기보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라는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깨달음의 가능성은 어느 누구에게나 매일 매순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종교계의 수장들이 성탄절이나 석탄일을 앞두고 서로 만나 사찰이나 예배당, 그리고 성당에서 서로의 대축제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연말이면 절마다 성탄 트리를 만들어 예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해주고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음력 4월이 되면 성당 입구에 연등을 내걸기도 한다. 종교행위에 경계가 없고 진리가 서로 통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이 같은 모습을 시민들도 참 좋아한다.

교리 달라도 종교의 본질은 같아

사실 종교 간에 교리와 믿음이 다르다고 해도 표현 방법이나 외피가 다를 뿐 그 내용을 따져보면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흐르는 강물은 하나인데 그 물을 떠 마시는 우물이 다양한 모양을 갖추고 있을 뿐이고 사과를 표현하는 말이 언어마다 다르지만 그 맛은 똑같은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집어넣고 같은 점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고리타분한 교리문답이나 정형화된 종교 간의 의식을 확 뒤집어놓고 보면 크게 두 가지 황금률(黃金律)이 나온다. 첫째는 모든 생명이 신성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신성한 생명을 자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진리는 이렇게 아주 단순하다. 이같이 단순한 진리를 현대적 의미로 바꿔본다면 '공감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공감에서 배려가 나오고 배려에서 공감은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성탄절을 앞둔 지난해 말, 경북 경산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병원은 2년 넘게 사측과 노측이 양분돼 서로를 향한 분노를 쌓아가면서 상대방 탓만 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만 갔다. 지역의 정서도 험악해져 병원에 대한 민심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섣부르게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병원 앞에는 컨테이너가 가로막혀 있었고 독기 어린 구호가 난무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확성기로 절규하듯 소리치는 탄식은 깊어져만 갔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필자는 한 스님을 찾아가 "중생이 저렇게 아파하는데 우리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제안했다. 양측은 우리의 제안에 마주보고 앉게 됐고 마라톤 협상 끝에 다행히 노사 갈등은 해결됐다.



모두가 똑같은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저마다 한발씩 양보하면서 협상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는 '부처님 크리스마스'를 체험할 수 있었다. 스님과 나는 단지 아주 작은 공감과 배려를 공유한 것뿐이었다.

한발씩 양보하고 공감ㆍ배려하길

99.9%가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통섭하고 공명(共鳴ㆍ공감하여 따르려 함)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99.9%가 서로 다른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교류하면서 석탄일과 성탄절의 참뜻을 공유하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가장 신성하고 거룩해야 할 종교가 때로는 서로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기도 한다. 원리원칙만을 고집하는 근본주의 중에서도 '종교적 근본주의'는 일종의 자폐증과 같은 병리적 질병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서야 되겠는가. 요즘 너도나도 참으로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죽기 살기로 헉헉거리는 중생들에게 공감과 배려의 또 다른 얼굴로 부처님이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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