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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3년… 기로에 선 대형마트 영업규제 (상)] 전통시장 활성화 명분 잃고 소비자·영세상인 피해만 키워

3년간 전통시장 매출 되레 감소

대형마트 협력사·농어민도 시름

환영 못받는 '규제위한 규제' 전락

원점에서 재검토 목소리 높아져


#1.지난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이마트(139480) 하월곡점. 평소 같으면 한산한 시간대였지만 매장 안은 이른 저녁부터 찬거리를 사러 모여든 고객들로 북적댔다. 주부 이은미(35)씨는 "내일이 의무휴업일라 미리 1주일치 장을 보러 왔다"며 "맞벌이를 하는 탓에 주말 외에는 장 볼 시간이 없는데 언제까지 계속 불편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이튿날 이마트 하월곡점 인근에 위치한 숭인시장. 관할 성북구 내 대형마트가 일제히 쉬는 날이었지만 시장을 찾은 손님은 간간이 눈에 띄었고 일부 가게는 아예 문을 닫았다. 20년째 정육점을 운영한다는 김정예(53)씨는 "대형마트가 쉰다고 시장에 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그나마 단골손님 덕에 가게를 꾸리고 있는데 내년에는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입 3년을 맞은 지방자치단체의 대형마트 규제가 기로에 섰다. 최대 명분으로 내세웠던 전통시장 활성화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소비자와 영세상인의 피해만 커지고 있어 지금이라도 대형마트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2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국내 유통업체가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의무휴업 적용 및 영업시간 제한이 정당하다는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대형마트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법적 명분도 부족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현재 8건에 달하는 대형마트 규제 관련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지난 2012년 3월 도입 당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제도의 취지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이에 따른 실익과 폐해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는 소비자 선택권 침해라는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일사천리로 대형마트 규제를 도입했다.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전통시장 전체 매출액은 지난 2009년 22조원에 달했지만 2010년 21조4,000억원으로 감소했고 2012년에는 20조1,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대형마트 규제가 전국으로 확산된 2013년에는 19조9,000억원을 기록하며 20조원대마저 무너졌다.

전통시장 1곳당 평균 매출 역시 줄곧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9년 171억원이었던 전통시장 1곳당 매출액은 2010년 167억원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14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5년 간 연평균 매출 하락률은 15.4%에 이른다. 당초 취지와 달리 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 활성화의 효과가 사실상 미미하다는 얘기다.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는 "대형마트 규제는 한국규제학회로부터 19대 국회 의원입법 중 '최악의 규제'로 꼽힐 정도로 소비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라며 "경제민주화의 구호에 사로잡혀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의 피해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대형마트 규제 이후에 대형마트 매출 감소를 제외한 관련 유통업계의 피해가 연간 5조3,37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부문별로는 대형마트 납품업체가 3조1,32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1차 생산자인 농어민과 대형마트 입점업체도 각각 1조6,545억원, 5,496억원에 달했다.

한국유통생산자협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도 대형마트 규제 이후 2년 동안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협력사와 농어민의 매출은 2조원 가량 줄었다.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 농수산물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대형마트라는 판로까지 제한되면서 농어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은 "대형마트 규제 이후 산지 농업법인의 매출이 평균 10% 이상 감소하고 있고 결국 인력도 줄일 수밖에 없어 농어민의 시름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대형마트 규제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입을 모은다. 명분에만 치우쳐 대형마트 규제를 강행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전통시장과 유통업계가 상생하는 방안으로 절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 규제가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됐다"며 "현실적으로 대형마트 규제를 폐지할 수 없다면 의무휴업일과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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