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3월27일] 헌트 형제 & 은(銀) 투기 권홍우 편집위원 전기저항이 낮아 사진기와 전자제품에 많이 쓰이는 귀금속. 뭘까. 답은 은(銀). 물가상승세에 고민하던 헌트(Hunt) 형제는 여기에 착안했다. ‘은을 매집하면 인플레이션 헤징이 가능하고 차익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텍사스 석유재벌의 막대한 유산을 받은 벙커(Bunker)ㆍ허버트(Herbert) 헌트 형제가 은 투기를 시작한 1974년 시세는 온스당 3.27달러. 세계적 부호의 매집에 가격은 6.70달러로 뛰었다. 선물시장에서 대량 주문을 내고 현물시장에서는 실물을 거둬들이는 수법, 즉 ‘사자’를 극대화하고 ‘팔자’는 최소화하는 형제의 전략에 은 가격은 1980년 1월 온스당 50.06달러까지 올랐다. 형제가 매입한 은의 규모는 약 100억달러어치. 사상 최대의 투기작전은 성공 직전에 무너졌다. 채산성 악화로 폐쇄됐던 광산이 재가동되고 장롱 속 은이 쏟아지며 공급이 넘쳤기 때문이다. 정부도 규제에 나섰다. 당황한 헌트 형제는 은행돈으로 시세를 떠받쳤다. 두 달간 미국 전체 대출금의 10%를 빌려 가격 부양에 나섰지만 3월 초 가격은 40달러 이하로 내려갔다. 파국이 찾아온 것은 1980년 3월27일. 형제의 대출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은 시세가 반토막 나며 온스당 10.80달러로 떨어졌다. 증시까지 덩달아 흔들린 ‘실버 목요일’의 위기는 미국 정부와 연준(FRB)의 발 빠른 대응으로 곧 안정을 되찾았으나 실물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수년간 금과 은을 비롯한 금속과 원자재 값 급등세도 헌트 형제 투기사건 이후 20여년간 바닥권에서의 탈출로 볼 수 있다. 은 투기로 1987년 파산한 헌트 형제와 달리 은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의 소식도 들린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투기와 투자의 차이가 뭔지. 입력시간 : 2007/03/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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