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시민이 주체적 개인이자 고유한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배양한 계층을 뜻한다면…(중략)…조선에서 시민의 맹아는 식민지가 시작되자 성장을 멈췄고…전쟁 여파로 시민 개념은 국민과 인민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서의 '시민(市民)'은 도시인을 가리키는 지역적 분류용어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였고, 고대 로마는 주권자들을 위한 시민법을 두고 있었다.
근대 민주주의를 연 프랑스혁명,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을 '3대 시민혁명'이라 부르는 것에도 '시민'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먼저 스스로에게 "과연 나는 시민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던진 저자는 보수 논객으로 분류돼 온 사회학자 송호근 서울대 교수다. 저자는 길지 않은 수필들로 자신의 '일상 속 시민성'부터 고백한 다음, '공공성의 부재'라는 심각한 근원적 문제를 품고 있는 한국사회, 아직도 시민이 되지 못하고 국민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시대와 역사를 진단한다.
"우리의 시민계층은 정신적 무정형이 특징이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의 시민 계층은 "서글프고 신나는" 상반된 두 정서를 동반하는데, 1960년대 빠른 도시화로 시민 계층이 양적으로 급성장했지만 새로운 시민 세력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건전한 '계층적 대항세력'이 없었기에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음을 내포한다. 유럽의 경우 귀족층의 이상주의·퇴폐주의·우월성 등에 대항해 시민층은 합리주의·경험주의·사익과 공익의 조화로운 화합을 추구하며 성장했다. 저자는 "(유럽의) 이런 시민층의 정신적 무기는 합리성, 경제적 무기는 물질적 풍요"였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풍족함을 얻어냈으나 시민층이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정신적 양식은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시민성의 실체를 되짚게 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지목하며 "경제는 시간 단축이 가능해도 사회는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근대가 입증한 역사적 명제"라고 꼬집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시민민주주의'다. 시민참여, 시민권, 시민윤리가 그 핵심이다.
계층·학력·성별 제한 없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론장을 형성하는 게 시민참여이고, 제대로 된 시민권은 권리와 책임의 양 날개를 갖춰야 한다. 시민윤리가 바로 그 책임을 뜻한다. 공공성을 향한 자각,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적 헌신 등의 시민윤리를 가진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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