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정치 선전물 같은 영화다. 오프닝 장면부터 독도 영유권분쟁 화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장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장면 등을 삽입하며 ‘적’(일본)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쏟아 붙는다. 감독은 시사 이후 ‘영화를 통해서라도 일본을 들이받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 영화는 끊임없이 일본을 ‘들이받는다.’ 영화는 잃어버린 조선의 국새를 찾아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게 넘어간 경의선의 권리를 되찾는다는 내용이 중심. 통일의 분위기 속에 남북은 경의선철도 개통을 하려 하지만 일본은 ‘1907년 대한제국과 맺은 조약에 의해 경의선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은 일본에 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통해 이를 저지한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동원해 한국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통일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는 대통령(안성기)은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100년 전 조약의 열쇠가 되는 국새를 찾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 친일세력으로부터 맥을 이어온 반대파들은 맹렬히 저항한다. 영화 ‘한반도’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소설은 1970년대 한국의 핵개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을 무력으로 제압한다’는 대중적 바람을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실현했다. 강우석 감독은 소설의 이런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잃어버린 국새의 비밀을 파헤치고 일본의 콧대를 누른다는 스토리를 통해 대중적 쾌감을 주고자 한 것. 하지만 감독의 이런 의도는 이야기의 빈약함 때문에 스크린에 실현되지 못한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실사 화면을 삽입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적’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정작 관객이 현실감을 느끼기는 힘들어 보인다. 영화 속에 보여지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복잡한 국제정세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판타지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아쉬움. 영화 속에는 안성기, 문성근, 조재현, 차인표 등 소위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이들의 연기만으로 이야기의 공허함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배우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거대담론을 기계적으로 읊을 뿐이다. 때문에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연기’라기보다 마치 ‘역사강의’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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