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지의 것에 대해 막무가내로 백안시하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심각한 만용이며, 또 한편 어리석은 무모함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이 글은 요즘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을 걱정하는 모든 이에게 공히 적용되는 표현인 것 같다. 지난달 12일 단순 기기 오작동으로 일시 가동 중단된 월성 원전 1호기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막연한 방사능 두려움 버려야
특히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등 대형 사고의 경우 모두 당국이 적시에 진솔한 설명을 하고 세계 시민의 이해를 구했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원전을 빼고 다른 사고 모두의 경우 어느 당국도 적절한 대민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어떨 땐 사고 전말에 대한 발표가 미뤄지거나 진실이 숨겨지기도 했고 일반인이 쉽게 납득하기에는 복잡한 기술적 상황이 뒤엉켜 있기도 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근 주민들 중에는 그들을 안정시키는 정보는 백안시하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그릇되고 과장된 발표에 더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버려야 한다. 우린 어차피 하늘과 땅과 물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헤엄치며 산다. 우리 모두의 몸을 포함해 우주 자체가 방사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영겁의 시간 속에 진화를 거듭하며 웬만한 방사선에 적응했다.
문제는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 사고인데 구멍 뚫린 1~3호기 원자로,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4호기 핵연료 저장조가 일본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위협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편서풍이 방사성 물질을 후쿠시마에서 태평양 쪽으로 날려보내고 문제의 방사성 지하수가 동해 앞에 이르러선 바닷길에 끊겨 나은 편이다.
독일을 한번 둘러보자. 지멘스의 에너지국장은 독일 에너지 정책 수행을 위해 오는 2030년까지 한화 약 2,000조원의 비용을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10년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68%, 세계 5위 브라질의 연간 경제 규모보다 많은 것이다. 그중 원전 폐지비용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저탄소 전력 생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원전 폐지로 10기가와트(GWe) 용량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 완공하고 오스트리아 석유화력발전소를 가동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독일은행은 원전 7기의 영구 정지와 남은 원전의 조기 폐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20년까지 3.7억톤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설계기준 초과 사고 방지책 강화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달 13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1주년이 되는 올 3월11일까지 사고 분석에서 도출된 시정명령을 각 발전소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두 가지는 사용후연료 저장조 계측장치 강화와 설계기준 초과 사고에 대한 방지 대책 강화다. 우리 당국도 체계적인 이행지침을 발행하고 사업자도 조속한 시일 내에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수용성이다. 우리 모두 원전 안전을 이야기할 때는 입술이 아닌 가슴과 손발로 해야 한다. 아무리 우리 운영실적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불시 고장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서 원전이 모두 따끈하더라도 국민의 체감온도가 올 1월처럼 싸늘하다면 지루한 평행선은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절대 안전이란 있을 수 없다. 석유도, 석탄도, 대안도 없는 우리에게 원자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원전 안전을 너머 사람과 자연의 안녕을 논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세계 최고 원자력 안전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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