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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자동차보험 시장의 암울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가 나왔다.
바로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말) 자동차보험 원수보험료(12조8,255억원)가 전년보다 1.67% 줄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꾸준히 성장했던 손해보험사에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제는 절벽 끝까지 왔다"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등의 위기감이 넘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근 반년 동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적자 늪에 빠져 식물인간처럼 돼버린 자동차보험을 살리기 위해 자구책을 내놓아야 할 보험사는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보험료를 항아리에 넣고 입구를 막아버린 금융 당국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보험료 누수의 원흉인 자동차 정비수가, 의료수가 등의 개혁작업은 이해 관계자 간 이견조정을 이유로 만년 거북이걸음만 하는 양상이다.
한 중형 손보사 고위 임원은 "자동차보험이 몸통(손보사)을 흔들고 있다"며 "위기감이 커지면서 이제는 자동차보험을 둘러싼 각종 제도ㆍ규제ㆍ발상 등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고등 켜진 애물단지=손보업계에서 자동차보험의 위상은 근간이자 뿌리와 같은 사업에서 우환거리ㆍ계륵과 같은 존재로 추락했다. 자동차보험 비중이 삼성화재ㆍ현대해상 등과 같은 대형사는 30~40%, 중소형사는 50%, 업력이 짧은 업체는 9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서글픈 현실이다. 장기보험ㆍ화재보험 같은 다른 상품을 팔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로서 역할 정도가 그나마 순기능으로 꼽힌다.
실적은 참담하다. 2000회계연도 이후 계속 적자를 냈다. 누적 적자는 8조원을 넘었고 올 회계연도(4~8월)에도 3,398억원의 손실을 냈다. 납입 보험료 중 고객에게 나간 보험금 비율인 손해율은 적정 수준인 78%를 웃도는 80% 중ㆍ후반을 웃돌지만 대당 보험료는 꾸준히 줄어든 탓이다. 실제 대당 보험료는 2011년 연간 67만3,687원에서 지난해 63만8,093원으로 5.3%나 감소했다. ▦차량등록대수 증가율의 둔화 ▦온라인ㆍ마일리지 상품 등 할인상품 확대 ▦보험료 인하 및 동결 등이 영향을 미쳤다. 차량등록대수의 경우 2010년 3.6%에서 2011년 2.8%, 2012년 2.4% 등으로 갈수록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고 보험료가 적은 온라인 자동차 비중은 지난해 27%까지 컸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다이렉트보험은 높은 할인율 때문에, 오프라인은 설계사 교육, 유지비 등의 부대비용과 수수료 등의 사업비 때문에 현 구조라면 마이너스를 피하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시장에서의 위상 하락, 대규모 구조조정 등을 감수하고 전체 조직의 50%가 넘는 자동차보험을 접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료 단속 등 각종 규제가 당장은 달콤할 수 있지만 보험사 입장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저금리에 설상가상…한계 상황 직면=특히 저금리는 가뜩이나 주력인 자동차보험에서 죽을 쑤고 있는 손보사의 허리를 더 휘게 하는 요인이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손보업계 전체 자산운용 수익률은 4.26%로 2년 전 5.06%에서 1%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3.77%에서 2.24%로 하락했다. 자동차보험의 고전이 계속되면서 온라인 전업사인 하이카다이렉트는 최근 일반 손보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다른 보험사들은 인터넷 상품으로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설계사의 반발로 여의치 않다.
이런 와중에 자본규제인 위험기준자기자본비율(RBC)도 강화돼 유상증자 등 자본확충을 해야 하는 점도 골칫거리다. 한 중형 손보사 관계자는 "대형사도 RBC 비율을 맞추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며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지만 당국이 장기보험상품이 적은 손보사 특징을 알면서도 RBC를 150%로 높게 잡았다"고 비판했다.
◇유기적 총체적 개혁으로 시스템 만들어야=자동차보험을 손보기 어려운 이유는 보험료 시스템이 자동차 정비수가, 의료수가, 교통법규 등 여러 제도와 맞물려 있는데다 당국도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보험료 인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넝마가 돼가고 있는 자동차보험을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상과 시도가 절실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와 관련, 보험사에 경영 자율성을 주고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제기된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박사는 "요율구조ㆍ상품개발ㆍ약관변경 등은 모두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천편일률적 상품만을 낳아 경영은 어렵지만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유인해왔다"며 "민영보험의 취지를 살려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손보사 임원은 "자동차보험의 공공적 성격 때문에 각종 규제를 적용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비수가ㆍ의료수가 개혁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는 이중적인 접근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손보사 임원도 "보험료를 업계 자율에 맡기더라도 당국에서 우려하는 정도의 보험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가뜩이나 시장경쟁이 치열해 고객을 잡기 위한 할인정책이 많이 나오는 판국에 보험료를 누르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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