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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사람] 노희찬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섬유는 성장잠재력 무한한 소재산업…정부 지원 확 늘려야



차·항공기 등 고부가 산업으로 영역 넓어져

R&D 투자 확대, 선진국과 기술 격차 해소를

외국 근로자·탈북자 활용해 부족한 인력 충당

FTA 효과 극대화 위해 개성공단 활성화 필요


"섬유산업은 이제 더 이상 빛바랜 사양산업이 아닙니다. 패션의 울타리를 넘어 조선ㆍ항공ㆍ자동차ㆍ건설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기틀이 되는 소재산업의 영역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노희찬(사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재산업으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갖춘 섬유산업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업계와 정부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노 회장은 "국내에서는 아직도 섬유산업을 단순히 몸에 걸치는 의복 관련 분야로만 국한해 한물간 산업으로 오해하지만 전세계는 지금 섬유를 소재산업으로서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세계 섬유산업은 의류용과 산업용으로 양분돼왔다. 중ㆍ저가형 의류용 섬유는 개발도상국이, 고가 의류용 및 산업용 섬유는 미국ㆍ일본ㆍ독일 등 선진국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특히 국가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산업용 섬유는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고 노 회장은 설명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매일 입는 옷 외에도 자동차ㆍ항공기ㆍ건축자재의 소재로 섬유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섬유산업이 단순 봉제ㆍ가공산업을 뛰어넘어 새로운 소재산업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섬유를 전부 수입에만 의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 회장이 국가 소재산업으로서 섬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신섬유로 손꼽히는 탄소섬유의 경우 철보다 10배나 강하지만 무게는 5분의1에 불과하죠. 자동차 소재의 17%만 탄소섬유가 사용되더라도 차량 연비가 300%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전세계 어느 기업이라도 안전성과 경량화를 모두 충족시키는 산업용 섬유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전세계 신섬유 시장은 지난 2008년 2,094억달러에서 오는 2015년에는 두 배를 훌쩍 넘는 약 5,814억달러까지 규모가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향후 7년간 신섬유의 연평균 성장률은 15.7%로 일반섬유(5.9%)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범용소재의 섬유기술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반면 신섬유의 기술 수준은 아직 선진국 대비 65%에 불과한 실정이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4~7년가량 뒤처지는 셈이다. 또 산업용 섬유가 전체 섬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5%에 불과하다. 산업용 섬유의 비중이 60%에 달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노 회장은 이러한 기술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적극적인 설비투자와 더불어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용 섬유는 대단위 설비투자가 수반되는 장치산업으로 무엇보다 설비의 선진화 없이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며 "연구개발(R&D) 지원과 낮은 금리의 자금 제공, 투자세액공제 등을 포함해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해외 선진국들은 섬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국은 섬유대학 컨소시엄이 1992년 공동 설립한 국가섬유센터(NTC)에서 매년 미국 상무부로부터 1,000만달러의 지원을 받아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R&D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신에너지ㆍ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를 중심으로 '차세대 섬유기술전략'을 수립해 신섬유에 대한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유럽연합(EU)도 1984년부터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으며 유럽 각국은 공동으로 신섬유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노 회장은 섬유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로 만성적인 인력부족 현상을 꼽으면서 현재 국내 섬유산업의 전체 인력 부족률은 10%대로 수요 대비 약 3만명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지만 정작 생산현장에 일하려는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더욱이 중소기업이 99%를 차지하는 섬유산업의 경우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죠. 그동안 자동화 설비 도입과 공정 개선 등을 통해 이제 더 이상 '3D업종'이 아니지만 여전히 섬유산업은 대학을 나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기업들은 해외 인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외국인 근로자 사용을 규제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실제로 2008년 7만6,800명이던 제조업의 외국인력 도입쿼터는 이듬해 2만3,000명까지 줄었다가 점차 늘고 있지만 올해 현재 4만9,000명으로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노 회장은 섬유산업을 비롯한 국내 제조업의 만성적인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국인 근로자의 도입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재 5만명에 못 미치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쿼터를 10만명 수준까지는 늘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존 산업의 일자리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며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좋은 설비를 갖춘 기업이더라도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노 회장은 인력부족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해법으로 국내 탈북자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 수는 2만3,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취업지원 정책이 아직 제한적인 탓에 이들의 고용률 역시 50%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탈북자들이 기술을 배워 생산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구인난 해소는 물론 향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탈북자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노 회장은 이러한 문제들만 해결된다면 국내 섬유산업도 과거 수출효자로서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섬유산업은 197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 총 수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 선수였다. 1987년에는 단일업종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구조 개편으로 과거의 명성이 바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세계 8위의 섬유 수출국이다. 최근에는 적극적인 설비투자와 구조조정, R&D, 고부가제품 수출 확대 등에 힘입어 지난해 159억달러 수출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부활의 나래를 펴고 있다.

더욱이 미국과 EU 등 세계 최대 시장과 잇따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은 국내 섬유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노 회장은 "FTA는 단기적으로는 관세철폐에 따른 가격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기술개발 등 생산성을 높여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섬유교역이 선진국 중심에서 다자간 경쟁체제로 전환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 EU, 인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등 거대 시장과의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은 국내 섬유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한ㆍEU FTA가 발효된 후 1년간 우리나라의 대EU 섬유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1% 증가한 14억1,8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7월 한미 FTA 발효 이후 우리나라의 대미 섬유 수출도 5.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섬유 수출이 2.1%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FTA 효과가 서서히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노 회장은 FTA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절반이 섬유업체들인데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경쟁력은 물론 숙련도도 뛰어나 국제적으로도 노동생산성이 높기 때문이죠.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물류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도 또 다른 강점입니다. 만약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받아 FTA 관세 효과를 적용 받는다면 우리 기업들은 엄청난 경쟁력을 갖게 되는 셈이죠. 앞으로 남북관계가 잘 풀려 국내 섬유산업이 개성공단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인재 육성 없이는 기업 영속도 없죠

"아무리 좋은 설비도 사람없인 무용지물"

노 회장, 장학재단 설립 등 아낌없는 투자


올해로 만 50년 섬유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노희찬 회장은 "아무리 훌륭한 설비를 갖추고 있더라도 결국 그 설비를 돌리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며 "반세기 동안 섬유산업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은 바로 사람의 중요성"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962년 내외방적에 입사한 그는 10년 뒤 삼일염직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섬유산업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삼일방직을 일궈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인재 중심의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후진국에 아무리 좋은 설비가 있더라도 설비를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이치죠. 기업은 무엇보다 좋은 설비와 더불어 좋은 인재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지 않고서는 기업이 영속할 수 없다는 게 노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섬유산업도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맞서 계속 도전해나갈 수 있는 인력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뛰어난 인재들이 마음껏 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노 회장은 이처럼 남다른 인재관으로 국내 섬유산업의 인재양성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가 2009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삼일방장학재단은 지금까지 42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매년 국내 대학의 섬유 관련 분야 학과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장학재단을 만들어 연간 25명의 섬유패션 전공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후원도 시작했다. 섬유산업연합회는 현재 12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향후 100억원 규모까지 확대해 국내 중소 섬유업체들을 위한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 밖에도 섬유패션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멘토로 선정해 젊은 인재에게 이들의 오랜 경험과 성공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멘토링 사업과 학술캠프ㆍ현장견학 등 다양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 회장은 "국내 섬유산업을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능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 지원함으로써 차세대 성장동력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섬유산업연합회는 앞으로도 미래의 섬유산업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이 국가적ㆍ산업적 재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약력

▦1943년 경북 영천 ▦1968년 영남대 화학공학과 졸업 ▦199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수료 ▦1962년 내외방적 입사 ▦1972년 삼일염직 설립 ▦1977년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 이사 ▦1982년 대구청년회의소 회장 ▦1983년 삼일화성 대표이사 회장 ▦1987년 삼일방직 대표이사 회장, 대한방직협회 이사 ▦1990년 대구염색산업공단 이사장 ▦2001년 제17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2008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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