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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이종호 비씨카드 사장

"36년 외길… 금융인생 졸업논문 비씨카드에 쓰는 중"




법조인 되기 위해 사법시험 준비 중 친구따라 얼떨결에 한국은행 입사
재벌개혁·저축銀 구조조정 등 주도 '한국 금융산업 산증인' 으로 불려

2002년 공직생활 접고 경영인 변신 L G-신한카드 성공적 합병 이끌어
카드·통신산업 모두 포화상태 직면 새로운 금융결제 시장 개척해갈 것


지난해 3월 비씨카드 사령탑에 오른 뒤 취임 1년을 맞은 이종호(64ㆍ사진) 사장. 그는 '금융인생의 졸업논문'을 비씨카드에서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금융계에 종사한 지 36년째를 맞은 이 대표에게 '한국 금융산업의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가슴 뛰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 사장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그에게 지난 40년은 숱한 난관과 도전, 그리고 열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달음에 달려온 듯한 시간들이었다. 그는 평생 금융인으로 살아왔지만 청년시절 그의 꿈은 변호사였다.

충북 청주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유난히 명석했던 이 사장. 그가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을 때는 온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법조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법시험에 두 번 고배를 마시며 하릴없이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학창시절은 정말 암울했어요. 삼선개헌ㆍ유신헌법 등 독재권력에 의해 법질서와 정의가 짓밟히는 모습을 보며 법학도로서 큰 회의를 느꼈죠. 아주 오랫동안 바라던 법조인의 꿈이 흔들리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또 무엇이 돼야 할지조차 모르던 때였습니다."

이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한국은행 입행 시험을 보러 갔다가 40년 금융인의 인생이 시작됐다.

한국은행에서 이 사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업무는 1990년대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일이다.

"당시에는 재벌들에게 모든 금융혜택이 집중됐던 때였어요. 재벌들이 은행 돈을 빌려서 업무용도로 쓰지 않고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하며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는 국내 60대 재벌기업들의 오너와 특수관계인, 8촌까지의 친인척 등 이른바 재벌들의 족보를 만들었다. 이들 간의 지분변경이나 자금흐름을 면밀히 감시하며 방만한 계열사들을 정리해나가 당시 재벌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2004년 STX에 인수된 범양상선이나 한보 사태를 촉발한 한보그룹의 부도 역시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1990년 5ㆍ8 부동산특별대책에 따라 재벌 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처분하며 속을 많이 끓이기도 했다.

"부동산마다 사연 없는 부동산이 없었어요. 당시 모 건설회사 회장의 경우 부산에서 극장을 처음 창업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 첫 사업을 시작했던 극장터를 팔지 못하고 있었어요. 강제매각을 하려니 인간적으로 미안한 생각도 들더군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제주도 제동목장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어요. 그 목장을 처분하라고 하니 정부와 실랑이도 벌이고 한동안 재계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였죠."

이 사장의 금융인생 40년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였다. 이는 동시에 그가 금융인으로서 사명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의 외환위기를 최소 1~2년 전부터 미리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스탠더드앤푸어스(S&P)나 무디스 같은 국제신용평가사 직원들이 외환위기 전부터 수시로 한국을 찾아 기아자동차나 단자회사의 건전성과 관련한 질문을 자주 했어요. 그때는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하나 싶었는데 한국만 위기가 닥쳐온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죠."

외환위기 직전 한국은행 역시 격동에 휩싸여 있었다. 은행감독원의 분리를 둘러싸고 한은법 개정 파동이 벌어지며 은행원들이 모두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 당시 기분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죠. 외환위기가 닥쳐오는 줄 모르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었으니 죄책감 또한 컸죠. IMF 사절단이 점령군처럼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국에 요구하는 수준이 사실상 실행 불가능한 수준이었어요. 마치 참외밭에 군화를 신고 와서 서리를 해가는데 밭을 죄다 짓밟아 놓고 가는 심정이랄까요."

이 사장은 그리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 등 심각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부도위기에 직면한 이른바 'PIGS' 국가들을 보면 1990년대 후반 한국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4개 국가들은 IMF의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두 손 들어버린 것을 한국인들은 2년여 만에 달성했다"며 "한국 금융산업이 후진적이어서 IMF체제를 맞기는 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저력은 해외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이 사장은 1999년부터 금융감독원에서 비은행감독국 국장직을 맡아 당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당시 230~240개에 달하던 저축은행들이 120여개까지 줄어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었다. 이 때문에 이 사장은 지난해 저축은행들의 구조조정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때는 예금자 보호장치가 충분하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스스로가 철저한 감시자 역할을 했어요. 조금만 부실 징후가 보여도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 의해 구조조정이 됐던 측면이 있죠."



오늘날 저축은행 사태는 예금자와 감독당국의 직무유기, 저축은행의 모럴해저드라는 세 가지가 맞물려 비롯됐다는 게 이 사장의 시각이다. 특히 그는 저축은행 사태가 정치논리로 풀려나가는 현 사태를 안타까워했다. "저축은행 문제는 금융산업 내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해요. 자꾸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저축은행 역시 지역밀착형 서민금융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 주민들의 밥숟가락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지역경제와 함께 호흡하는 금융기관으로서의 모습을 하루빨리 찾아야 해요." 금융계 원로의 쓴소리가 한국 금융업계에 큰 울림을 주는 듯하다.

2002년 공직생활을 접고 투자증권회사나 카드ㆍ캐피털사 등을 거치며 정책 집행 대신 현장에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으로 무장, 경영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특히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 LG카드의 구조조정, 신한카드와의 합병을 주도할 당시에는 이 사장의 승부사다운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LG카드 회생을 위해 회사와 구주주인 LG그룹, 채권단에 1조5,000억원의 신규자금 투입을 요청했다. '미친 소리'라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이 사장의 확신이 채권단과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그는 직원 단 한 명도 감원하지 않고 LG카드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 당시 우리사주에 참여해 회사에 빚을 지고 있던 직원들 역시 2007년 신한카드와 합병되기 직전 모든 부채를 청산하도록 도와줬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신한카드와 LG카드의 합병은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로 남아 있다.

"2000년대 초반 은행감독국에서 조ㆍ상ㆍ제ㆍ한ㆍ서라 불리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토종 은행들의 구조조정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회사를 살리겠다고 우리사주에 전재산을 털어넣었던 행원들이 회사가 M&A되면서 큰 빚만 안은 채 회사를 줄줄이 떠나는 모습을 그대로 목격했죠. 그때부터 무의식중에 회사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각인된 것 같아요."

정년퇴직 시점을 훌쩍 넘겨 지난해 이 사장은 비씨카드에서 금융인생의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는 카드산업이나 통신산업 모두 포화상태를 맞았어요. 하지만 카드와 통신의 결합이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어요. 결제 환경이 과거의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스마트폰을 활용한 스마트 지불시스템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이런 중요한 시점에 비씨카드가 새로운 금융결제 환경의 리더로서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이 사장이지만 열정만큼은 30대 못지않다. 비씨카드 사업구성을 설명하고 청사진을 제시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말도 빨라진다. 자신감과 애정이 듬뿍 배어 있다.

"저는 평생 정책금융기관에서 정책을 만드는 일종의 그림쟁이로만 살아왔어요. 그러다 현장에 나와 제가 그려봤던 그림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붓 터치를 옮겨갈수록 생각이 정교해지고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겁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라도 한국 금융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언제든지 개척해나갈 겁니다." 60대 노장은 여전히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었다.




● 이종호 사장은


◇약력 ▦1948년 충북 청주 ▦1967년 청주고 ▦1973년 서울대 법대 ▦1976년 한국은행 입행 ▦1990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감독기획국 부국장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설립준비단 파견(법령기획팀장) ▦1999년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장 ▦2000년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 ▦2002년 LG투자증권 상임감사 ▦2004년 LG카드 기획관리부문장 겸 CFO ▦2007년 LG카드 대표이사 ▦2009년 KT캐피탈 대표이사 ▦2011년~ 비씨카드 대표이사 사장





"모바일 결제시스템 선도"


비씨카드 '차세대 모바일카드' 진두지휘

이종호 비씨카드 사장은 지난해 11월 'BC 차세대 모바일카드' 사업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새로운 모바일 컨버전스 환경에서 지불결제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독자적인 모바일 결제 환경을 구축하려는 의도다.

BC 차세대 모바일카드는 BC카드가 지난 2010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개발한 모바일카드 국내 표준으로 지식경제부의 모바일 지급결제 표준이 될 예정이다.

국제 카드사를 중심으로 모바일카드 규격이 이미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모바일카드는 플라스틱카드의 무선거래(RF) 기능을 모바일기기로 옮겨온 것이다. 하지만 BC 차세대 모바일카드는 스마트폰 환경에 최적화돼 전자지갑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을 통해 모바일카드의 실시간 발급, 카드 탈회, 조회 등 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BC 차세대 모바일카드가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진정한 모바일카드 규격으로 인정받는 이유이다.

지난해 12월에는 KT와 함께 차세대 모바일카드인 '업턴(up turn)카드'를 출시해 시장에서 호평을 얻고 있기도 하다.

BC 차세대 모바일카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을 지향하며 온ㆍ오프라인 결제 가맹점 확대 및 쿠폰ㆍ멤버십 통합 서비스 등 모바일 환경에 특화된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 사장은 "BC 차세대 모바일카드는 모바일 컨버전스 환경에 최적화된 카드로 해외 카드사에 대한 기술종속 없이 안정적인 모바일 결제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며 "언젠가는 BC의 기술이 전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결제기술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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