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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재벌들 비난대상 전락”
입력2004-02-18 00:00:00
수정
2004.02.18 00:00:00
황유석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기업풍토를 기대하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지자 황제처럼 군림하던 아시아 족벌기업주들이 과거의 관행과 새 조류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최신호에서 보도했다.이 잡지는 "아시아의 내로라 하는 기업은 사실상 모두 족벌기업들"이라며 "이들은 국민생활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으면서 경영은 권력을 방패막이로 삼아 구멍가게식으로 운영돼 왔다"고 비판했다.
타임이 거명한 아시아의 대표적 족벌기업은 모리 미노루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부동산 재벌 모리빌딩, 리카싱 회장이 이끄는 홍콩의 허치슨 왐포아 그룹, 아닐 암바니 부회장이 지휘하는 인도 최대 석유화학업체 릴라이언스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들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은 생필품에서 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해 일반인들이 이 기업들과 절연(絶緣)해 단 몇 분이라도 생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교적 관습 등으로 굳어진 기업주들의 초월적인 지위는 개방화, 민주화 물결에 따라 무너진 독재정권처럼 무력해지는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타임은 아시아 기업주들이 존경 대신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가족기업을 `가족만을 위한 기업`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족기업이 서양에서도 보편화돼 있지만, 아시아의 가족기업은 주주의 이익이 아닌 일가족의 안위를 보장하는 데 최우선을 뒀고, 계열사들을 부당하게 지원함으로써 서양의 가족기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게 이 잡지의 설명이다.
최근 이 같은 구시대적 가치에 사회적 경종이 울린 데는 자본흐름의 유연성, 자유무역, 정보의 발달, 치열한 시장경쟁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주들은 기업주에게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은 집중된 부의 편중이 자신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혁의 화두로 등장했다.
이 잡지는 "족벌경영인들이 사회적 단죄를 받는 경우가 최근 들어 급속히 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사례에 주목했다.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재벌에 속했던 현대와 쌍용이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해체됐고, 뇌물 주가조작 등 갖가지 기업범죄로 일가가 구속되는 기업주들이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회계조작 등으로 지난해 구속됐던 최태원 SK㈜ 회장, 북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전달한 혐의를 받다 자살한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증여세 부과 등은 한국 기업풍토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타임은 모건 스탠리의 한 투자분석가를 인용해 "과거에는 이익창출보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게 아시아 기업의 행태였으나 최근에는 공공인식, 전문경영인이 족벌체제를 대신하는 쪽으로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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