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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에서 밥이나 할 일이지?

오종남 (통계청장)

오종남 통계청장

차를 운전하다 보면 ‘우리나라처럼 여자들이 운전하기 힘든 나라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여자가 운전하다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대뜸 클랙슨을 울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남자들이 눈에 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차량의 흐름을 막는다고 불평이다. 여자가 운전을 하려면 “집에서 밥이나 할 일이지….” 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밥해놓고 나왔어요“ 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여자는 남자보다 길눈이 어둡다고 한다. 이것은 남자는 밖에 나가 사냥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림을 하던 원시시대의 역할 분담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원래 사냥꾼인 남자는 먹이를 잡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돌아다녀야 했고, 또 잡은 먹이를 가지고 어둡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했으므로 뛰어난 방향감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 여자는 식물을 재배하거나 열매를 채집하는 등 집과 가까운 주변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남자보다 방향감각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와 여성의 인구이동
우리의 어머니들은 고작해야 산 너머 마을로 시집을 가고는 했다. 새댁이 시집을 오면 이름 대신 친정동네의 이름을 붙여서 그곳에서 시집온 여자라는 뜻으로 ‘남산댁’이나 ‘강남댁’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가깝게 시집을 가다 보면 같은 동네에서 시집온 사람들도 한둘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윗뜸 남산댁’ ‘아랫뜸 남산댁’ 등으로 구분해서 부르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특별한일 이었다. 그런데 통계청에서 발표한 올해 1ㆍ4분기 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특이할 만한 점이 있다. 여자의 이동이 124만명으로 122만명인 남자보다 2만명이 더 많다. 여자 이동자 100명당 남자의 이동수를 말하는 인구이동 성비는 98.3을 기록했다. 이런 변화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나타났다. 지난 97년 인구이동 성비가 100으로 같아진 후 98년 98.8, 99년 96.8, 2000년 98.7, 2001년 98.8, 2002년 98.5, 2003년 97.8로 계속해서 여자의 이동이 남자보다 많은 추세다. 남녀의 인구이동 성비가 뒤바뀐 98년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다. 문을 닫는 사업체가 줄을 잇고 졸지에 직장을 잃은 가장은 거리를 방황하던 때였으니 가장을 대신해서 누구라도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자들이 직장을 찾아 정든 가족과 따뜻한 둥지를 떠나 여기저기로 이동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욱 활발해지는 여성의 경제활동
여자의 경제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이것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4년 4월, 남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달에 비해 0.3%포인트 상승했다. 그런데 여자는 0.8%포인트 올라 남자의 두 배를 훨씬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4월에 비해 남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0.4%포인트 상승했다. 그런데 여자는 1.3%포인트 올라 남자보다 세 배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15세 이상 여자 중 절반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여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고 여자의 활동영역도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이 세상의 반은 여자다. 아직도 여자를 “집에서 밥이나 할 일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발만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는 격언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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