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심층진단] 경제 위기… 정책 혼선… 고비마다 뚝심 리더십으로 정면돌파

■ 흔들리는 부총리 역대 경제사령탑은

강봉균 전장관

김진표 전부총리

이헌재 전부총리

한덕수 전부총리

강만수 전장관

윤증현 전장관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을 놓고 정부의 추진력이 다시 시험대에 서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팀이 투자활성화 대책, 고용률 70% 달성 대책, 재정건전성 대책, 공기업 구조조정 등 난제들을 추진하는 와중에 국회, 관계부처, 민간 이해집단 등의 저항과 민원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 부총리호는 뒤늦은 조각에도 불구하고 지난 상반기 경기 대응에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하반기 들어 정책조율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하다. 기재부의 한 간부조차 "정책 추진이란 토끼몰이 하듯 빈틈이 없어야 하는데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몰이꾼들의 대오가 흐트러져 있다는 느낌"이라고 고충을 토로할 정도다.

이에 따라 서울경제신문은 역대 주요 경제사령탑들의 리더십을 되돌아봤다. 특히 요즘 주목되는 전임 경제수장들은 김진표ㆍ이헌재ㆍ한덕수 전 부총리와 강봉균ㆍ강만수ㆍ윤증현 전 장관 등이다. 이들은 당시 정부의 초대 사령탑이거나 경제위기 상황이 뚜렷할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아울러 각자의 성격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강단의 차이는 있었으나 한 번 정책의 방향을 잡으면 제대로 일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뚝심의 리더십을 보였다.

◇강봉균 전장관, 바둑알 놓듯 마지막수 계산하는 고단수

17대 국회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강봉균 전 장관실에는 종종 바둑을 두려 방문하는 당내 인사들이 있었다. 당시 초선 금배지였던 한 386 출신 정객은 강 전 장관에 대해 "바둑알을 한 번 놓으면 마지막 수까지 다 읽히는 기분"이라며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강 전 부총리가 현역 경제사령탑을 맡았을 시절에도 마찬가지. 당시 그의 휘하에서 일했던 한 경제관료는 강 전 장관에 대해 "페이퍼(보고서류) 없이도 머릿속에 온갖 정책 통계와 현안들이 컴퓨터처럼 들어가 있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업무파악에 대한 200%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휘하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나 유관부처를 설득할 때도 빈틈이 없었다"고 전했다.

현 부총리 역시 일벌레로는 손에 꼽힌다. 그를 수행하는 기재부 직원들은 "밑에서 산더미처럼 올라가는 보고서들을 밤새 다 파악해 이튿날이면 업무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더라"고 전한다. 다만 현 부총리가 강 전 장관의 스타일에서 눈 여겨볼 점 있다면 상대방의 수를 읽는 능력이라고 여야 관계자들은 전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현 부총리는 합리적이긴 한데 다소 정직한 경향이 있다"며 "정치인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부처와 협상할 때에는 상대방의 카드를 읽고 들어와야 하는데 현 부총리는 그런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김진표 전부총리, 저돌성에 협상력까지 겸비 '빅딜의 달인'

지난 2003년 10월 말 정부는 종합부동산 대책을 내놓는다. '10ㆍ29대책'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1가구1주택자에게도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등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강력한 방안을 담았다. 그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때마다 유관부처의 반발에 부딪혀야 했다. '사회주의 발언' 구설수에 올라 정치적으로도 공세를 당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진표 전 부총리 시절 도입했던 주요 부동산 대책들은 이후 부동산 시장을 급랭시켰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진정효과를 냈다. 뚝심의 김진표라는 평가를 가감 없이 과시한 셈. 교육부총리 시절을 맡았을 때도 김 전 부총리는 대학 등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는 저돌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대책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부처 간 조율뿐 아니라 당정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에 적을 뒀던 한 정객은 김 전 부총리에 대해 "한마디로 빅딜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정부가 여당에 무언가 정책을 가져올 때에는 최선책뿐 아니라 차선책도 미리 염두에 두고 가져오는데 이미 여당이나 야당이 요구하는 안을 절충한 협상안이 계산돼 있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빅 이슈를 놓고 협상 상대방과 적절한 수준에서 주고 받으며 타결을 관철시키는 승부사적 기질은 현 부총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현 부총리는 정책을 흥정하는 빅딜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헌재 전부총리, 좌파 저항에도 카리스마로 경기살려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수장에 자리할 당시 정책 환경은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극심한 내수부진과 LG카드 문제, 북핵 위협 등으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신도 극대화됐다. 이런 대내외 변수보다 훨씬 컸던 것은 바로 당시 정치적 환경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른바 '386'으로 대변되는 좌파 정치 세력 속에서 정책적 추진력을 발휘하기는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로 시장을 장악했고 모피아의 정점에 섰던 이 전 부총리였지만 정치적 저항을 뚫기는 힘겨웠다. 현 부총리가 '경제 민주화'라는 흐름 속에서 투자활성화 등 정책 실행을 하는 데 힘겨워 하고 있지만 당시에 비하면 오히려 우호적인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는 취임과 함께 적극적인 경기부양과 부동산 시장 안정 등을 목표로 신용불량자 대책, 종합투자계획(한국판 뉴딜), 종합부동산세 도입, 자영업 대책, 벤처산업 활성화 정책 등 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내며 추진력을 과시했다. 청와대 등의 견제가 있었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그의 '부양 시리즈'는 이내 경기를 살려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좌와 우의 이념적 대결이 아무리 험난해도 부총리가 부양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친기업적 사고, 이에 맞춘 뚝심만 갖고 밀어붙이면 아무리 기득권에 사로잡힌 기득권과 이해집단도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전부총리, '무색무취' 혹평 속에서도 '외유내강'

요즘 관가에서는 종종 한덕수 전 부총리가 회자되고는 한다. 참여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내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총리를 맡기도 했던 그는 사실 취임 초기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정자 시절 유약해 보인다는 마타도어에 시달렸던 현 부총리와 일면 비견되는 대목이다.

취임 전후 당시 금리정책을 놓고 재정경제부가 한국은행과 일순 불협화음을 냈다가 한은의 금리인하 협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도 두 인물의 궤적은 닮았다. 이 같은 한 전 부총리의 리더십을 놓고 당시 관가에서는 '겉으론 물러 보이지만 실제는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 부총리 역시 지난 4월 역대 최단기인 한 달여 만에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성공하면서 '외유내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현 부총리가 한 전 부총리로부터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부드러운 친화력ㆍ조율력으로 꼽힌다. 한 전 부총리는 취임 100일을 지내면서 당시 기고만장하던 386 중심의 청와대 실세는 물론이고 여당, 정부를 아우르며 정책 잡음을 잠재웠다. 현 부총리가 아직 여당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못 끌어내고 있는 점이라거나 투자규제 완화 정책 등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부처 간 갈등을 노정시킨 점과는 대조되는 점이다.

한 기획재정부 간부는 "현 부총리도 나름 국회를 전방위로 돌고 각 부처와 협의를 열심히 한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국회 등에서는 "현 부총리가 스킨십을 하려는 것은 좋으나 정작 스킨십의 결과물을 못 만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만수 전장관, 독주 있었지만 바른 길 아는 조타수

성장론자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환율 정책으로 숱한 논란을 야기하면서도 끝내 환율주권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갑이 두둑해야 지출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수출주도의 경제에서는 고환율을 통해 수출을 늘려, 국내로 많은 돈을 유입시켜야 이후 분배 등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고집불통, 독단의 리더십 등의 꼬리표도 달고 다녔다. 때문에 경질 압박에 숱하게 시달리기도 했다. 현직에 있을 때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이 같은 독주 탓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는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 가능했다. 미시에서부터 거시까지 웬만한 사안에 대해 꿰뚫는 그의 혜안이 논란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추진하는 힘이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운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재정부 관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다 보니 그의 평가는 장관직을 끝내고 떠난 뒤 더 긍정적으로 바뀐다. 특히 엔저를 축으로 하는 일본의 아베노닉스의 효과를 보면서 강 전 장관과 오버랩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장관이 신념과 확신을 갖고 일을 할 때 부처 직원들도 훨씬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면서 "방향을 정확히 하는 조타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윤증현 전장관, 직설 화법… 소통으로 생보상장 등 해결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때부터 굵직한 현안을 정면돌파로 해결했다. 하지만 독단이나 독선은 없다는 게 그의 리더십이 뛰어난 이유다. 실제로 2005년부터 시행될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에 대해 "과거 분식회계의 소급적용을 놓고 기업의 불안감이 높다. 부칙개정을 통해 과거 분식행위를 자진고백할 때는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혀 분식회계 파동을 종결 짓는다. '누가 와도 풀 수 없을 것'이라던 생명보험사 상장도 그의 손을 거쳐 18년 만에 해결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강만수 장관에 이어 2009년 2월 경제수장의 자리에 오른 윤 전 장관은 "솔직함이야말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위기극복에 동참을 호소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밝힌 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수정했다. 많은 정책도 구사했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정면돌파하는 그의 수사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제위기 당시 2009년 성장률을 -2%로 예상했지만 결국 그 해 0.3%의 성장을 구현한다.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도 28조원에 달하는 재정 조기 투입, 적극적인 기업 규제 완화 등이 주효했다. 당시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정도였는데 오죽하면 외신으로부터 '교과서적인 회복'이라는 찬사를 들었을까. 그러면서도 할말은 하는 관료였다. 특히 2011년 6월 기획재정부 장관을 떠나면서 "최근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무상(無償)이라는 주술(呪術)에 맞서다가 재정부가 사방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립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후배관료들에게 당부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