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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를 넘어라] <2부> 글로벌 위기 현장을 가다 ② 그리스

유령도시된 공단… 임금 50% 뚝… "정치가 나라 망쳤다" 비난<br>긴축에 공무원 해고·연금 삭감… 소비침체로 대규모 불황 불러…<br>아테네 상점 5곳 중 4곳 문닫아<br>국민 수십년간 복지 취해 살아…<br>공공부문 등 개혁 이뤄져도 경제 회생 난망 우울한 분석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인적도 드물어진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가 스타디우 거리를 따라 셔터를 내린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아네테=서일범기자




유령도시로… "정치가 나라 망쳤다" 분노
[R의 공포를 넘어라] 글로벌 위기 현장을 가다 ② 그리스유령도시된 공단… 임금 50% 뚝… "정치가 나라 망쳤다" 비난긴축에 공무원 해고·연금 삭감… 소비침체로 대규모 불황 불러…아테네 상점 5곳 중 4곳 문닫아국민 수십년간 복지 취해 살아…공공부문 등 개혁 이뤄져도 경제 회생 난망 우울한 분석도

서일범기자 squiz@sed.co.kr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인적도 드물어진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가 스타디우 거리를 따라 셔터를 내린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아네테=서일범기자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무더웠던 지난 7월26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중심부 산티그마 거리 일대에는 대낮인데도 문을 연 상점보다 셔터를 굳게 내린 곳이 훨씬 많았다. 얼추 세어보니 상점 5곳 중 4곳은 영업을 포기한 것 같았다. 인근 옷가게에서 일하는 타소스 니포라스(32)씨는 "재정위기 이후 소비경기가 고꾸라진데다 지난해부터는 상가를 부수고 약탈하는 폭력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 영업을 중단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발걸음을 옮겨 오모니아 광장에 이르자 현지 가이드가 팔을 잡아 끌었다. 그는 "여기서부터는 경찰도 손을 쓸 수 없는 우범지대라 낮이라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살기 좋던 그리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라고 씁쓸하게 말을 흐렸다.

5년째 계속된 경기침체로 소비가 확 줄어들면서 제조업체들도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택시를 타고 30분쯤 이동해 그리스 최대 항구도시인 피라에우스의 공장 밀집지역에 가보니 공장 10곳 중 9곳가량이 문을 닫아 유령도시 같은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리스 북부 코모티니 공단 지역에는 10년 전만 해도 90개에 가까운 공장들이 운영됐지만 지금은 20~30곳만 간신히 살아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퍼시픽리뉴에너지의 타노스 니포로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은행들이 기업대출 창구를 완전히 닫아버리면서 투자가 중단됐다"며 "자연히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고 소비가 마비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지중해의 천국'으로 불리며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던 그리스는 실업과 빈곤ㆍ범죄가 지배하는 세계 경제위기의 진앙지로 지금 이 시간에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비극 부른 유로화의 저주=비극의 시작은 유로화를 도입하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회원권'을 손에 쥔 200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10년물 국채금리는 2001년 초반만 해도 디폴트(채무불이행) 마지노선인 7%를 넘나들었지만 든든한 유로화 울타리 속으로 들어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국채금리는 5% 아래로 뚝 떨어졌다.



자금조달이 쉬워지자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 숫자와 선심성 복지예산을 크게 늘렸고 시장에는 돈이 넘쳐났다. 2004년에는 아테네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터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등 질곡의 역사를 견뎌온 그리스가 마침내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파티의 끝은 참담했다. 2011년 기준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6%까지 치솟으면서 디폴트 위협을 느낀 투자가들은 그리스 국채를 내다팔기 시작했다. 돈줄이 막힌 정부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공무원을 해고하고 연금을 삭감했다. 국민 5명 중 1명이 공무원인 그리스에서 긴축은 곧 소비침체로 이어져 대규모 불황을 불러왔다. 현재 그리스의 일반 근로자나 자영업자들의 임금은 지난해와 비교해 30~50%씩 줄어든 상태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날 만난 택시기사 밤바키디 넥타리오스(43)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달에 3,500유로(487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인 2,000유로로 수입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최대 고객인 연금 수령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덩달아 택시 승객도 줄었다는 것이다.

◇정치와 공공 부문으로 비난 집중=사정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자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짜놓지 못한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유로존 가입으로 시중에 싼 돈이 넘쳤을 때 경제체질을 개선하지 않고 흥청망청한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전세계 183개국을 대상으로 작성한 '2011년 부패인식지수(CPI)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의 청렴도는 10점 만점에 3.4점으로 콜롬비아ㆍ엘살바도르 등과 함께 공동 80위를 기록했다. 현지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간단한 인허가를 받기 위해 서류 한장 떼는 데 3~4개월이 걸린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재무장관이 얼마 전까지 원장으로 재직했던 그리스 경제산업연구재단(IBOE)의 니코스 벤투리스 연구원은 "1~2년마다 한번씩 조기총선이 치러질 정도로 정치 시스템이 불안하면 투자가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공무원 시스템을 개혁하는 동시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시스템과 공공 부문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그리스 경제가 곧바로 회생의 길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도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복지에 취해 살아온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긴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던 급진좌파연합(시리자)가 6월 2차 총선에서 27%의 득표율로 전체 300석 중 71석을 차지하는 제2당이 된 사실은 그리스 국민들이 가진 인식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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