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금은 현금으로 1인당 30만원, 총 90만원을 내셔야 합니다." "카드는 안되나요?" "안됩니다." 직장인 권모(29)씨는 최근 한 여행사에서 4박 5일 일정의 중국여행 상품을 고른 뒤 결제하기 위해 카드를 꺼냈다가 거절당해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놨다. 권씨는 "불쾌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용 대부분을 현금으로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의 고질적인 카드 거부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결제를 막거나 현금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이들에게 깎아주는 행태는 현행법(여신전문금융법 제19조)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여행사들이 카드를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여행사에 근무하는 A씨는 "외국 호텔 예약이나 현지 인솔 가이드 선수금 지불처럼 반드시 현금을 건네야 할 경우가 생긴다"고 항변했다. 특히 신용카드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중국ㆍ인도 여행상품의 경우에는 더욱 현금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일대일로 여행계획을 짜주는 중소규모의 여행사에게 결제 대금에 따라붙는 카드 수수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분 좋게 떠나는 여행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예약금이나 전체 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해도 군말 없이 낸다"고 말했다. 일부 여행사는 블랙컨슈머들이 카드 결제를 빌미로 돈을 제때 주지 않아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여행사 가이드로 일하는 B씨는 "카드로 내겠다고 약속하고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신용카드사를 통해 지불을 거절하는 손님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몇 달 후의 일을 미리 약속하고 잡아놔야 하는 여행사로서는 현금 결제가 최소한의 보험이라는 지적이다. 카드 결제 거부 신고절차가 복잡하고 또 적발 후 업체가 받는 제재가 미약한 수준이라는 점도 여행업계가 현금 우선 관행을 고집하는 이유로 꼽힌다. 국세청은 카드 결제를 거부하거나 카드 수수료를 덧붙인 금액을 강권하는 상황을 제재하고 있지만 가산세 부과같은 행정처분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과 여신금융협회에 신고를 할 수 있지만 금감원은 법에 따른 관할기관일 뿐 업체를 단속하는 임무는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다. 카드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여신금융협회는 소비자 보호팀에서 신고를 받고 가맹점에 주의ㆍ경고를 주거나 카드사에 통보해 가맹점 계약을 정지시킨다. 이마저도 신용카드 가맹점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더구나 이 방법은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의 해결책일 뿐 신고를 한 소비자가 곧바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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