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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함께 도시락 드실래요?"


도시락, 미술관 벽을 허물다

길게 펼쳐진 돗자리 위에 50명이 하나둘 앉았다. 이들 앞에는 예쁘게 포장된 도시락 하나둘 놓였다. 이들 주위로는 두 명의 남녀가 타악기와 리코더로 음악을 연주하며 돌았다. 상황만 보자면 어느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야외에서 점심을 즐기기 위해 잔디밭에 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이 도시락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엄숙하게만 느껴지는 미술관이다.

미술관과 도시락 파티,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가능한 이유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예술가와의 런치박스’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이 행사는 미술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미술관 측에서 마련한 이벤트 중 하나. 아티스트가 점심 메뉴와 각종 퍼포먼스를 준비해 제공하고 참가자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작가와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때문에 매회 50명을 모집하지만 금세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날의 주인공은 박승원·이지양 작가. 퍼포먼스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이들은 런치박스를 위해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직접 도시락 50개를 쌌다.

낮 12시. 참가자들이 돗자리에 앉자 이들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작가는 리코더와 타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춤추며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참가자들에게 최면을 건다는 설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20분이 지나자 식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단서가 있었다. 작가가 나눠준 꽃띠를 맨 부위로는 식사할 수 없었다. “여러분은 지금 최면에 걸렸습니다. 여기는 풀밭 위며 꽃띠를 착용한 부위는 마비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참가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계속됐다. 꽃띠를 착용한 손으로 밥을 먹는 이들에게는 집중적으로 리코더를 불며 ‘창조적인 식사’를 독려하고 자유롭게 대화도 나눴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분당에서 왔다는 주부 박명주 씨는 “시립미술관에서 보내주는 이메일을 보고 참여하게 됐다. 미술관 바닥에 자리 깔고 앉아 작가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근 직장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온 윤영원 씨도 “회사 점심시간에 식사와 함께 예술을 접할 수 있어 색다르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정보나 이야기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진행한 이지양 작가는 “음악과 춤 등 제의 행위를 통해 ‘굿판’과 같이 집단환상을 부여한 것”이라며 “연극적인 설정을 통해 관객이 보는 즐거움과 함께 참여자로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시에 가까워지자 관객들은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커피를 들고 하나둘씩 일어났다. 그러자 최면이 풀리고 잠시 풀밭이 됐던 미술관 로비는 말끔히 정리됐다.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매월 첫째, 셋째 화요일 1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2개월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모집하며 선착순 50명에 한한다. 참가비는 1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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