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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1월 27일] <1561> 1840년 '동방위기'


1840년 11월27일, 알렉산드리아. 영국과 오스만제국령 이집트가 협약을 맺었다. 골자는 종주국인 오스만튀르크에 대한 적대행위 중지. 시리아의 점유권을 빼앗겨 이집트 영토는 본토와 수단ㆍ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좁혀졌다. 서구에 의해 중동지역이 분할된 게 이때가 최초다. 이집트가 근대화 정책으로 육성한 서구식 군대도 감축돼 5만명을 넘었던 병력이 1만8,000명으로 묶였다. 일방적인 양보로 이집트가 얻은 것은 무하마드 알리 가문의 계승권을 인정받았다는 점뿐이다. 반면 수도까지 점령당할 뻔했던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속국인 이집트의 반란을 왜 영국이 나서 막았을까. '위기'로 봤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은 오스만으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중근동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려는 이집트의 영토팽창을 '동방위기'로 규정하고 병력과 함대를 보냈다. 회교권에서는 유일하게 서구식 근대화 기운을 탔던 이집트는 오스만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때마다 열강의 막판개입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세계의 공적이었던 오스만은 결과적으로 기독교 국가들의 도움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오스만을 도운 나라는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등 4개국. 이집트가 오스만을 대신하는 강국으로 떠오른다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국제질서의 틀인 빈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이해관계가 다른 영국과 러시아까지 한데 묶었다. 독자적인 근대화와 완전독립의 꿈이 저지된 지 42년이 지난 1882년, 이집트는 영국에 점령당해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동과 아프리카도 유럽에 먹혔다. 서구가 원했던 '안정'은 탐욕과 침략의 전제조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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