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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버디를 잡으려 애쓰기보다 보기를 줄이자고 마음 먹었더니 잘 풀리더라고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데뷔 후 3년하고도 한 달여 만에 첫 승을 신고한 허윤경(23ㆍ현대스위스). 그는 지난 시즌 준우승에만 네 번이나 머문 끝에 19일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우승 순간부터 한없이 눈물을 쏟던 허윤경은 기자회견장에 트로피를 놓고 가 다시 찾으러 올 정도로 감격에 취해 있었다.
2010년 데뷔 후 60개 대회 출전 만에 우승, '59전60기'를 이룬 허윤경을 21일 전화 인터뷰했다. 첫 승으로 물꼬를 텄으니 다승왕이나 상금왕 같은 계획을 잡을 법도 했지만 허윤경은 완강했다. "주변에서 '우승 한 번 해야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 스스로도 조급해져 있었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몇 승을 더 하겠다고 마음 먹기보다는 내 리듬대로만 경기하려고요."
허윤경은 마음을 비우니 첫 승이 찾아왔다고 했다. "지난 대회를 망치고 의욕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연습 때도 짜증만 나고 해서 남자 대회를 구경갔는데 거기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됐어요." 그는 이달 초 KGㆍ이데일리 대회에서 공동 44위에 머문 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 1라운드를 직접 관전했다. 9개 홀을 갤러리가 돼 따라다닌 허윤경은 "잘 안 풀릴 때도 차분하게 차선으로라도 만회하는 남자선수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후 허윤경은 라운드에 임하는 자세를 '버디를 잡자'에서 '보기를 줄이자'로 바꿨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고치고 나간 첫 대회에서 지긋지긋한 준우승 징크스와 작별한 것이다.
국가대표 출신인 허윤경은 함께 대표팀을 지낸 양수진과 이정민, 이미림이 우승을 경험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첫 승을 하면서 예쁜 용모와 수더분한 성격도 조명 받고 있다.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미소천사'와 '순둥이'. 우승이 확정되자 대회장을 찾은 10여명의 팬클럽 회원들도 허윤경과 함께 펑펑 울었다.
배구선수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 덕분인지 허윤경은 키도 171㎝나 된다. 허윤경은 "어머니는 169㎝인데 식구들이 전부 큰 편이다. UCLA(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공부하는 언니는 나보다 더 크다"며 웃었다. 올 11월로 후원사와 계약이 끝나는 허윤경은 벌써부터 유수 기업 세 곳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올 시즌 뒤에는 일본 진출 계획도 갖고 있다. "다행히 첫 승을 했으니 홀가분하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서든 존경 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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