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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배중호 국순당 사장

"古書 뒤적이며 백세주·생막걸리 개발… 국내 주류시장에 전통주 돌풍 일으켰죠"



가업인 누룩 전문업체 물려받아 우리술 제조기술 복원에 매진… 기존 주류시장의 높은 벽 뚫고 다 죽어가던 전통주 되살려내 "품질 향상·마케팅 역량 키우면 글로벌 시장에 내놔도 통할것" 전통 약주인 백세주로 국내 주류시장에 신화를 창조했던 배중호(58ㆍ사진) 국순당 사장. 그는 지난 1992년 2억원에 불과했던 회사의 매출을 백세주로 2003년까지 1,3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백세주의 인기가 성숙기를 지나자 매출액은 5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제2의 신화를 창조했다. 또 하나의 전통주인 막걸리를 통해 지난해 다시 1,000억원대의 고지를 밟은 것이다. 국순당은 무엇보다 허물어지고 있는 전통주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국순당이 등장한 후 약주가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에 2%로 20배 성장했고 막걸리는 2%까지 추락했다가 지난해 5%, 올해 상반기 10%로 5배나 성장했다. 한때 국내시장의 80%까지 차지했던 우리 술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막걸리의 해외수출도 날개를 달았다. 글로벌 와인시장은 1,500억달러(161조1,450억원, 2008년 기준). 국순당은 해외 술에 비해 건강 기능성이 뛰어난 우리 술을 글로벌 제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꿈꾼다. 배 사장은 "한식의 세계화가 활발해지고 있어 술의 세계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우리 술을 사랑하고 전통주 업체들이 타성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 마케팅 경쟁에 힘쓰고 정부가 주세관련 제도개선에 나서준다면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 사장이 연세대에서 생화학과를 전공한 것은 가업인 누룩에 관심이 많아 발효식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 사장의 집안은 포항에서 막걸리 양조장을 하다 1960년대 전통주 제조에 꼭 필요한 누룩 전문업체로 전환했다. 배 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가업을 잇기보다는 다른 길을 택했다. 국내 굴지 그룹의 수출을 담당하는 상사의 무역부에 입사해 2년이 넘는 기간 근무했다. 드디어 1980년 아버님의 부름을 받고 가업을 잇기 위해 국순당의 전신인 ㈜배한산업 연구소로 입사했고 백세주를 선보인 다음해인 1993년 국순당 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전통주 외길을 걷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국가적인 이슈로 떠올랐고 전통 주류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내세울 만한 술이 없었어요." 막걸리는 1985년 국내 주류시장의 50%를 차지했고 그 이전에는 80%까지 차지했지만 불과 5년 만인 1990년 12%로 급격히 위축됐다. 카바이트로 만들어 문제가 되는 등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너무 추락해 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약주업체는 거의 다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배 사장은 전통주가 뭔가를 고민했고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술인 막걸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막걸리 시장이 위축됐지만 그래도 약주시장보다는 100배나 컸다. 새 면허가 안 나와 퇴계원의 양조공장을 사들였고 제품도 좋은 것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팔 수 있는 곳은 제조공장이 있는 남양주군뿐이었다. 약주와 소주는 도 단위, 막걸리는 군 단위에서만 팔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1,500개의 영세한 양조장이 군 단위로 독점해 품질 경쟁, 마케팅 경쟁은 아예 생각도 안 하는 상황이었다. 배 사장은 주류시장의 발전을 위해 경쟁이 가능해지도록 공급제한을 풀려고 헌법소원을 내고 가두서명에 나서며 책자를 낼 정도로 온갖 방법으로 제도개선에 나섰지만 바위에 계란치기였다. 양조장이 기존 질서에 안주해 99.9%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바보짓이라고 했다. 일단 판매가 가능한 해외에 내놓기 위해 밀폐 살균 캔 막걸리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서양에서 열린 와인쇼에도 참여했지만 시음을 하는 순간 뱉기 위해 쓰레기통을 찾을 정도였다. 아직 막걸리는 단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94년 다 쓰러져 가던 약주시장의 공급제한이 풀리자 약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고서를 뒤적이며 제품개발에 힘써 우수 제품을 개발해냈고 음식점 메뉴판, 스토리텔링 등 기존 업체들과 달리 다양한 마케팅 노력도 기울였다. 유통망을 갖지 않았던 국순당이 기존 주류시장의 벽을 뚫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어나면서 건강에도 좋은 약주 백세주가 결국 히트를 쳤다. 백세주의 성공으로 1992년 수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시판 2년 만인 1994년 20억원, 1998년 207억원, 2000년 650억원으로 매년 100% 가깝게 신장했고 2003년에는 1,3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3년을 기점으로 매출은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백세주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2008년에는 540억원대까지 추락했다. "신제품 내는 데 계속 실패했습니다. 별 짓을 해도 안 됐습니다. 너무 욕심을 좇아간 거예요. 사실 백세주는 매출은 2003년 피크를 쳤지만 실제로는 2000~2001년에 최고치를 쳤습니다. 억지로 끌고 간 거예요." 배 사장은 '백투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을 외쳤다. 소주의 도수는 25도에서 23도로 내려가는데 백세주는 소주와 경쟁하겠다는 심산으로 13도에서 오히려 15도로 올렸던 것을 반성했다. 더 차별화했어야 했는데 욕심이 불러오는 마케팅의 오류로 실패하게 된 것이다. 배 사장은 원래 목표였던 우리 술에 대한 열정을 살리기 위해 우리 술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고서를 보고 연구해 연구원당 1년에 1개씩 복원하자는 목표도 세웠다. 이로 인해 땅에 떨어졌던 직원들의 사기도 다시 솟았다. 이때 축적한 우리 술 복원기술과 국순당의 발효기술은 국순당 생막걸리로 탄생하면서 막걸리 시장에 돌풍으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던 와중에 막걸리에 대한 붐이 생겨났다. 막걸리에 대해 물어보려는 기자들은 거의 대부분 가장 많이 연구활동을 펴온 국순당에 물어와 홍보가 절로 됐다. "공급지역 제한을 풀기 위해 굉장한 노력 끝에 2001년에 막걸리도 풀렸고 그러다 보니 시장에 경쟁이 생겨나 좋은 제품이 나와 소비자들도 다시 막걸리를 찾게 된 거죠." 배 사장은 막걸리로 다시 제2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배경으로 시대적인 운이 작용한 것 외에도 국순당이 나름대로 끊임없이 준비해온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배 사장은 이제 우리 전통주의 글로벌화에 주목하고 있다. 맥주나 와인, 위스키 등 외국 술에 비해 아직은 너무 미약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배사장의 생각이다. 어느 나라나 맥주시장이 40~50%로 대부분이고 각국의 전통주는 10%대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 사케도 일본 내 점유율이 14~15% 정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출고가를 기준으로 맥주 45%, 소주 40%, 막걸리 5%, 기타 약주 과실주가 12%를 차지했다. 배 사장은 약주는 성장한다고 해도 최대 10% 정도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다르다. 유산균이 많고 콜레스테롤 억제작용 효과, 통풍예방 효과 등 건강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어느 술보다도 좋다는 것이다. 막걸리는 알코올이 6도로 맥주 중 가장 많이 팔리는 4도보다 조금 더 높은 먹기 편한 술이다. 기술개발에 힘쓰면 지구촌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맥주시장도 넘볼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우수한 우리 술을 되찾고 주류업체는 품질개발, 마케팅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중요한 제도적인 변화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전근대적인 주세부과 기준으로는 주류산업 발전이 요원하고 국민들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일제시대 압제의 방편으로 만들어진 주세 관련법을 손질해야 합니다." 배 사장은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가세' 대신 알코올양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먹는 양은 줄이고 품질은 향상시켜야 하는데 종가세를 하다 보니 품질은 떨어지면서 양은 많이 먹도록 과세구조가 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종가세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 곳뿐이라는 게 배 사장의 주장이다. 일본이 침략해올 때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댄 주세 관련법의 골격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중호 사장은
▦1953년 대구 ▦1971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 ▦1978년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1978년 롯데상사 무역부 입사 ▦1980년 ㈜배한산업(국순당 전신) 부설연구소장 ▦1993년 ㈜국순당 대표이사
"전통주 막걸리·차례酒 직접 빚어보세요"

국순당 업계 첫 '우리술 강좌' 개설… 1년새 4000명이나 수강 인기몰이 "우리 술 한번 빚어보세요." 우리 술을 쉽게 만들고 즐기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국순당이 지난해 9월 주류업계 최초로 구성한 '우리술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강좌 개설 이래 1년 만에 벌써 4,000명가량이 수강했다. 배중호 국순당 사장은 우리 술 전도사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우리 술에 대한 강연에 적극 나선다. 그러나 배 사장 개인이 우리 술 문화를 전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설한 것이 우리술 강좌다. 우리술 강좌는 우리 술에 대한 지식과 소양을 쌓는 것은 물론 막걸리ㆍ약주ㆍ과실주ㆍ소주 등 다양한 우리 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과정은 기초과정인 '우리술 첫걸음(1일, 하루 4시간)'과 전문가 과정인 '우리술 벗되기(8주, 3시간/주1회)' 과정이 있다. 우리술 첫걸음 과정은 시대별로 우리 술과 문화 알아보기, 우리 술 분류 및 특징 알아보기, 막걸리 빚기 실습, 우리 술에 맞는 음식 알아보기 등으로 구성됐다. 우리술 벗되기 과정은 첫걸음 과정에 발효 이론과 약주 빚기 실습, 과실주 빚기 실습, 증류식 소주 내리기 실습 등으로 구성된다. 배 사장은 우리 술 교육을 위해 서울 삼성동 본사 사옥 내에 '우리술 아름터'라는 별도의 교육장까지 만들었다. 우리술 아름터에는 강의장과 직접 술을 빚을 수 있는 체험시설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모든 과정을 대상으로 기업 및 단체 강의를 희망하는 경우 협의 이후 별도 일정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배 사장은 "와인과 사케(일본 술)는 공부하면서 우리 술은 너무 모르고 알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며 "앞으로 와인의 소믈리에 같은 '우리술 전문가 과정'과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순당은 이번 추석을 맞이해 직접 빚은 술로 조상님께 제례를 올릴 수 있도록 '차례주 빚기 교실'도 운영한다. 조선시대 추석 차례주로 쓰였던 우리 술인 신도주를 직접 빚어 보고 일본 청주와 우리 차례주의 비교시음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문의 (02)513-8562, 홈페이지(www.woorisooledu.com, www.woorisooled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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