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총선거 결과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라구람 라잔(사진)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RBI에 경기부양을 주문하는 새 정권이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라잔 총재의 통화정책을 압박할 것이라고 13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현재 CNN 등 외신들이 내놓은 총선 출구 결과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 총리 후보가 이끄는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 및 연립정당들의 승리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모디 후보는 10년래 가장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인도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금리를 낮춰 투자를 활성화하고 루피화 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BJP의 주장이다.
이 같은 입장은 금리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려는 라잔 총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라잔 총재는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0.75%포인트 인상해 8%까지 끌어올렸다. 치솟는 물가를 억누르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야기한 루피화 가치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인도 경제매체인 이코노믹타임스도 총선이 끝난 지난 12일 라잔 총재가 BJP 정권과 거센 갈등을 빚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BJP 당직자들은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률이 RBI 목표치의 두 배가 넘는다며 라잔 총재를 공격하고 있다. BJP의 연립 군소정당인 잔타당 총재 수브라마니안 스와미는 기준금리 인하를 위해 라잔 총재를 교체해야 한다고 1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라잔 총재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한 포럼에서 "정권은 나를 물러나게 할 수 있지만 통화정책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RBI의 독립성 보장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분석가 출신이자 국제금융시장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라잔 총재가 조기에 사임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로이터통신은 RBI 80년 역사에서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난 총재는 2명뿐이라고 했다. 아룬 자이틀리나 BJP 대표는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라잔의 거취에 대한 질문에 "누군가 맡은 일을 잘한다면 유임시키는 것이 맞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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