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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강봉균 前 재정경제부 장관

차기정권 내내 3% 성장 힘들수도… 경제 리스트럭처링 필요<br>유럽위기 해결 3~4년 걸리고 중국도 경착륙 궤도<br>단기 재정지출로는 지금의 위기상황 대응엔 한계<br>변칙적 노동시장·편중 산업구조 등 모순 수술 시급<br>만기 주택대출은 10년 분할상환으로 갈아타게해야



"정부가 1ㆍ4분기 중 추가경정예산을 서둘러 짜는 게 좋겠어요. 최소 20조원 규모는 돼야 합니다."

지난 2009년 1월1일 한 야당 국회의원이 기자와 독대하며 던진 이야기였다. 새해벽두부터 추경론이라니. 20조원이라는 규모도 전무후무했다. 평소 같으면 코웃음을 칠 터였다. 하지만 발언자의 무게감이 남 달랐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인물. 당시 민주당 3선 의원이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다.

그해 서울경제신문은 강 전 장관의 발언 등을 빌려 파격적으로 1월2일자 정치면에서 선제적 추경론을 폈다. 정부도 처음에는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이더니 곧이어 슬그머니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무려 28조원 규모의 사상 최대 슈퍼 추경. 선제적 추경 덕에 우리 경제는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빠르게 회복됐다.

7일 기자는 서울 명동의 한 건물에서 다시 강 전 장관을 만났다. 유럽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번에 꺼내든 처방은 '경제 리스트럭처링(경제구조 혁신)'이었다. 그 의미와 배경을 살펴본다.

재정지출보다 경제모순 해결에 집중할 때

강 전 장관은 "지금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지출보다 경제 각 부분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한 때"라고 단언했다. 경제 리스트럭처링이란 무슨 뜻일까. 그는 이에 대해 "경제 각 부문의 모순점을 찾아내 개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금의 위기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와 달리 단기적 재정지출로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보다 근본적인 경제구조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변칙적 노동시장 ▦편중된 산업구조 ▦낙후된 서비스 산업 인프라를 시급히 혁신해야 할 우리 경제의 모순으로 꼽았다.

강 전 장관은 "대기업 노조가 너무 강력해지자 대기업들이 노조를 두려워해 정규직을 뽑으려 하지 않는다"라며 "이로 인해 정규직을 뽑는 대신 사내하청을 주는 변칙적인 노동시장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생산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사내하청이라는 이유로 정규직보다 보수를 덜 주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하냐"며 "이 같은 시스템이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대결적 노사관계를 개선하고 사내하청 관행을 대대적으로 뿌리 뽑을 새로운 노동시장 질서 마련을 주문한 것이다.

편중된 산업구조는 재벌 문제와 맥락을 함께 한다. 재벌의 과도한 시장지배력이 경제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다만 "재벌해체는 답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재벌은 재벌대로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거대 해외자본과 싸울 대표선수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해체보다는 "공정한 시장거래질서를 회복해 재벌을 개혁하는 게 정답"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재벌기업의 외형을 규제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해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기술혁신 같은 재벌의 선기능을 죽이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고언했다. 아울러 "그보다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재벌들의 경제남용 행위를 고치는 방식에 재벌개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 산업 인프라 개선을 위해 그는 정부의 역할론을 주문했다. 강 전 장관은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조기 퇴직자, 청년 구직자들이 (양질의 직장을 구하지 못해) 모두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다"며 "옛날 제조업을 육성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훈련시키고 전문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국가가 서둘러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숙련된 전문 서비스 인력을 교육하지 못하니 재벌이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뛰어들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며 "이것이 다시 (서비스업 분야에서) 재벌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위기 1~2년 내 해결 어려워"

강 전 장관이 2009년처럼 선제적 추경론을 꺼내지 않고 경제구조 혁신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탓이다. 그는 1~2년 안에 세계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풀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칫 차기 정권 내내 3% 이상의 경제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유럽 문제 해결과정이 지난하다. 강 전 장관은 "유럽 위기를 풀려면 남유럽 등 재정적자국의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통합 재정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금융 부문에서도 통합감독기구를 출범시켜야 (현지) 은행들의 부실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이 앞으로 3~4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ㆍ인도 같은 신흥국의 경기침체가 연달아 깊어지는 점도 우리 경제의 빠른 위기탈출을 막는 악재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8월 중국 고위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쓰촨성을 방문했을 때 그 지방도시에서 엄청난 부동산 과잉투자가 이뤄진 것을 목격했다"며 "그런데 그렇게 지어진 집들이 텅텅 비어 있더라"고 중국 부동산경기의 실상을 전했다. 아울러 "중국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임금상승이 이뤄지고 도시와 농촌 간의 정치적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이제 8% 성장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은 경착륙 궤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주요 수출시장이 부침을 겪는 와중에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고 있다는 학계의 경고는 강 전 장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는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노동력과 자본ㆍ기술혁신 등 3대 부문에서 우리 경제가 모두 위기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특히 노동 부문에 대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노동력 미스매칭이 심각하고 (노동력 수급을 위한) 이민정책에 대한 여론은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며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노동력 성장 요인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걱정했다.

투자여건에 대해서도 그는 "대기업들의 10여년간 투자 추세를 보면 해외 현장에서 시설투자를 늘릴 뿐 국내 투자는 늘리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기술혁신 같은 대변혁이 있어야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혁신을 하려는 의지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강 전 장관의 생각이다. 그는 "외환위기와 같은 충격이 있거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안철수 후보를 빼놓고는 혁신에 대한 얘기도 별로 없다"고 한탄했다.

금리인하만으로는 가계부채 해결 한계

강 전 장관은 꽉 막힌 우리 경제가 가장 먼저 당면한 위기는 가계부채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시중금리를 낮춰 차입자들의 금리부담을 더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의 빚 상환 의지가 줄어들어 도리어 가계부채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전 장관은 가계부채 문제를 풀려면 금리보다 대출상환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장 만기가 도래해 일시에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은행 등 대출 금융기관이) 만기 10년 이상의 원리금 분할상환대출로 갈아태워주라"고 제언했다. 어차피 은행으로서는 일시에 대출원금을 상환 받더라도 다시 누군가에 빌려줘야 하니 새로 다른 차입자를 찾을 게 아니라 기존 대출자에게 돈을 다시 빌려주되 만기를 장기로 늘려주고 매년ㆍ매월 일정 비율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해주라는 의미다. 이렇게 하면 차입자 입장에서는 당장 대출일시 상환 부담을 덜 수 있고 은행 등으로서는 일부 빚 상환을 하지 못하는 고객들 때문에 대출자산이 부실화돼 충당금 등을 쌓아야 하는 악재를 피할 수 있다.



빚 내서 재정지출 늘리는 정책은 안 돼

강 장관은 이처럼 우리 경제 각 부문의 모순을 해소하는 데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여야가 무리하게 나랏빚을 감수해야 하는 복지공약 발표에 골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무리한 복지정책보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며 "재정의 부담을 수반하는 항구적인 복지나 경기 활성화보다 경제 각 분야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새삼 여야의 복지공약을 경계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근래의 선거공약은 일회성 쇼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강 전 장관은 "예를 들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미지로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공약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덤빌 것이므로 재정건전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고언을 했다.

그는 "경제상황이 괜찮을 때라면 새 정권이 들어서며 지출구조도 뜯어 고치고 조세감면 축소도 하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2~3년에 걸쳐 저성장 늪에 빠질 것이 예상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대로 시행되면 국가가 빚을 늘릴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경계했다.

인터뷰 말미 각 대선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반값등록금'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대학은 학생이 아닌 대학 교수 수요에 맞춰서 세워지고 있다"며 "대학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인센티브로 재정을 지출해야지 정부가 가뜩이나 과잉인 대학의 등록금을 세금으로 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할말은 하는 '미스터 대나무'… 건전 재정 전도사로 돌아와

■ 강 前장관은

'건전재정포럼' 대표직 맡아 활동

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서 용퇴했다. 여야는 물러나는 그를 두고 민주당 '호남 물갈이'의 최대 피해자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민주당 내에서 그는 주류를 좇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야당 내 강경론이 팽배한 가운데 협상파를 자처한 그였다. 당의 보편적 복지론 공약에 대해서는 충분한 재원마련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지도부의 눈 밖에 났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소신파였던 그는 후배 관료들로부터는 "야당이면서도 할 말은 해주는 용기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강 의원은 공천 결과에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일부 의원들과 달리 "세대교체를 바라는 시대적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용퇴를 선언했다. 정파나 정세를 좇지 않고 소신껏 정책제언을 해온 그의 행보는 가히 '미스터 대나무'라 할 만큼 곧았다.

그런 그가 국가 재정을 지키는 전도사로 다시 돌아왔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직 경제관료들과 언론계ㆍ학계 인사 100여명이 참여한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았다. 강 전 장관은 처음에 대표직을 사양했지만 정치와 경제 영역을 섭렵한 그를 추천하는 주변의 권유가 강했다.

정계은퇴 이후 5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강 전 장관은 대선을 앞둔 국민 여론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한 방향으로 너무 편향되게 흘러가는 것이 걱정됐다고 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강경식 전 부총리나 진념 전 부총리 같은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셨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를 맡은 건전재정포럼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복지와 재정 문제를 들여다볼 방침이다. 강 전 장관은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진보학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가운데 정부 출연기관 학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 캠프에 있는 학자들은 후보의 생각만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뭔가 다른 목소리가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앞으로 건전재정포럼을 매월 2~3차례 열고 각 대선후보들의 대선공약이 재정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밀하게 검증할 계획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복지수요가 왜 이렇게 갑자기 커졌는지도 뜯어볼 생각이다.

그는 "국민들이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부나 재벌 등 지배계층이 잘못해서 복지수요가 갑자기 커진 측면이 크다"며 "시스템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자존심 강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까지 내가 일해서 먹고 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각 후보들의 공약을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데 대해서는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1943년 전북 군산 ▦군산사범학교 ▦서울대 상대 ▦윌리엄스대 대학원 석사 ▦한양대 대학원 경제학박사 ▦행시 6회 ▦노동부ㆍ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ㆍ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 ▦KDI 원장 ▦16ㆍ17ㆍ18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중도통합민주당 원내대표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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