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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심불량 사회


최근 기자는 A은행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오래 묵은 계좌가 있는데 일정 기일 안에 은행을 방문하지 않으면 예금 전액을 은행이 압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푼돈이길래 금액도 알리지 않았나 싶어 무시한 채 몇 주 보냈다. 그러던 중 문득 길에서 A은행 간판이 눈에 들길래 창구를 찾았더니 은행원의 반응이 가관이다. "손님 공돈이 생기셨네요? 새 상품이나 하나 드세요" 라는 게 아닌가. 통장에 남은 금액은 얼마인지 설명조차 없이 말이다. 실적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 창구직원의 양심불량에 울화가 치밀었다. 하긴 적지 않은 고객의 돈을 은근슬쩍 가로채려던 A은행이니, 창구직원의 그런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결과 중심주의 만연이 문제 이에 비하면 저축은행들이 보인 행태는 더 가관이다. 토마토저축은행은 몇 십억이 될까 말까한 그림을 담보로 아파트 건설업자에 1,000억원이나 빌려줬다 한다. 경제계에서는 SK그룹 일가가 회삿돈으로 선물투자를 했던 일이 뒤늦게 드러나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있다. 또 검찰에서는 30대 중반의 여검사가 40대 후반의 변호사로부터 벤츠 승용차 등을 제공받고 부적절한 커넥션을 유지해온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대검 감찰부는 지난 5월 이들이 내연관계를 맺고 검사와 변호사의 신분을 활용해 서로 잇속을 챙겨왔다는 제보를 받고도 이를 묵살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총체적으로 편법과 반칙이 활개치고 있다. 본분은 아랑곳없이 실적만 좇는 은행원들로 금융권이 채워지고 출세욕과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검사가 법조계를 장악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밝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모로 돌아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결과 중심주의가 만연하면서 이렇게 됐을 텐데, 요즘 정치권과 정부를 보면 앞날이 더욱 걱정이다. 공명심에 취한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국가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개그맨이 웃자고 한 농담을 죽자며 고소하고 설치다가 망신살이 뻗친 의원까지 나타났으니 국회는 그야말로 한심 무인지경이다. 여기에다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예산 확보를 위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혈안이 돼 있고 청와대와 정부도 여당과 선심성 예산을 주거니 받거니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국회와 정부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제 잇속만 채우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나라 살림을 갈라 먹으려 드니, 내년 예산은 '양심불량 예산'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선거를 앞둔 청와대의 모습도 좋지 않다. 6월 참모진 개편 때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현재 청와대에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내년 (19대) 총선 출마를 계획하고 있는 비서관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불출마에 있어서 나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전원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는데도 지금 적지 않은 참모진이 총선 출마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약속 뒤집기를 반복해온 이명박 대통령의 전례와 겹쳐지면서 정권의 미래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기희생 실천해야 참된 지도자 민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나라를 미국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한미 FTA를 시작한 당사자들이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권력을 쥐었을 때와 잃었을 때가 크게 다른 그 모습에 국민은 지독한 혐오감으로 몸서리친다는 점을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양심불량 사회는 근본적으로 모든 개인이 사사로운 이익에 본분을 망각하지만 않으면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이지만, 국가를 이끄는 지도층의 수준이 오늘날 우리 사회 정도라면 사정은 다르다.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는 '남보다 천만 배나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 이로움을 누리지 않아야 한다(夫以千萬倍之勤勞, 而已又不享其利)'고 했다. 명나라의 유학자 황종희(黃宗羲)가 국가지도자의 희생정신을 강조한 이 말대로 내년 두 차례의 선거를 거쳐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지도자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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