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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그후 10년] (2부-12) 노동시장도 양극화

■ '외환위기 그후 10년' 한국경제 좌표는 <제2부> 구조조종의 빛과 그림자<br>대기업 '철밥통' 비정규직은 '동네북'<br>98년 노동유연화 제도적 틀 마련불구 실업자등 양산

지난해 6월 26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금협상을 위해 부분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파업으로 텅 빈 자동차 생산라인에 조합원들이 벗어두고 간 장갑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지난 14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7층 대회의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해 방한한 국제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 일행과 한국노총 간부들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무디스의 토마스 번 부사장은 “한국은 선진국이나 비슷한 수준의 국가보다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이 강하다.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고 소득격차가 확대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선제 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기 힘들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도 안 된다. 대다수 영세 중소노동자들은 노동법 적용을 못 받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즉각 반박했다. 과연 이들은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시각차’를 드러내거나 ‘논쟁’을 벌인 것일까.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디스측과 한국노총은 강조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는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및 정규직 노동자들은 ‘철밥통’으로 굳어진 반면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은 ‘지나친’ 노동 유연성 때문에 고용 불안이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노동유연성의 제도적 틀은 갖춰= 지난 98년 2월6일 노사정위원회는 출범 20여일만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내놓았다.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안으로 정부와 재계, 노동계의 고통분담안을 담고 있었다. 기업 투명성 제고 및 구조조정 촉진, 물가안정, 실업대책 및 사회보장제도 확충, 수출증대 및 국제수지 개선 등 합의 항목은 90개에 달했다. 하지만 핵심은 고용조정제와 근로자 파견제 도입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해고의 길을 열어 놓아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쉽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노동계는 총파업 운운하며 강력 반발했지만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더 반발하면 떼놓고 가겠다”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엄포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노동계는 “정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원망스럽다”(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 “착잡한 심정”(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리)이라고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떠나버린 배’였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 본부장은 “DJ 정부 때 정리 해고가 가능해지면서 법적, 제조적 측면에서 고용의 경직성이 상당 부문 완화됐다”며 “대량 실업에 대응해 고용보험 확대 등을 통한 사회안전망을 어느 정도 갖춘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과거의 ‘덩치 불리기’식 경영에서 벗어나 수익성과 효율성을 중시한 것도 고용 시장에 변화를 몰고 왔다. 성과급과 연봉제가 도입됐고 계약직 및 경력자 채용 등이 확산됐다. ◇실업자ㆍ비정규직 양산으로 갈등 증폭= DJ 정부가 짧은 시간 안에 재벌 및 금융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등에 나선 데다 정리해고까지 쉬워지면서 실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97년말 56만명이던 실업자 수는 98년 7월 165만명으로 늘었다. 불과 7개월만에 100만명 이상이 더 급증한 것이다. 실업률도 같은 기간 2.6%에서 7.6%로 5.0%포인트나 더 늘었다. 실업률은 99년 2월 8.6%까지 치솟았다. 사회안전망을 갖췄다지만 한번 실업에 빠지면 재취업하기 어려운 한국적 현실 앞에 수많은 가장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비정규직도 급증했다. 지난 97년말 상용직 비중은 54.1%에서 2000년 47.5%로 6.6%포인트나 감소했다. 반면 임시직은 같은 기간 31.6%에서 34.1%로 2.5%포인트 늘었고 일용직도 14.3%에서 18.1%로 3.8%로 증가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와 고용 불안이 현실화되면서 노동계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98년 129건이던 노사분규 발생 건수는 99년 198건, 2000년 250건으로 급증했다. 또 은행 및 부실기업 퇴출, 공기업 구조조정 등에 반발한 노조측이 탈퇴하면서 노사정위원회도 유명무실해졌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DJ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인턴제, 계약직 등을 사실상 권장하면서 비정규직이 늘었다”며 “반면 질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자 노동계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시장도 ‘빈익빈 부익부’ 심화= 노동부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지난해말 현재 545만7,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5.5%에 이른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결코 적은 비중이 아니다. 하지만 OECD 등 국제 기관들이 여전히 국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하위권으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과도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배 본부장은 “대기업 근로자는 해고는 물론 전환 배치 등 회사 내부의 기능적 유연화 정도도 떨어진다”며 “반대로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지나치게 유연해 고용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부 대기업 노조는 전투적 노동운동으로 산업 공동화, 수출차질, 외국인 투자 저해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2006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전체 비교대상 61개국 가운데 46위를 차지해 선진국은 미국(6위), 일본(16위)은 물론 중국(38위), 대만(21위) 등 아시아 경쟁상대국보다도 훨씬 낮았다. 특히 노사간 갈등 정도를 반영하는 노사관계 부문은 61위로 전체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사분규 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2~2001년 동안 우리나라 모든 산업과 서비스업에서 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는 93.5일로 같은 기간 영국 (21일), 미국(48일), 스웨덴(30일), 독일(9일), 일본(2일) 등 여타 선진국보다 크게 높았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노조 파업 일수가 최근 줄어들기는 했지만 불법 및 폭력 파업은 여전하다”며 “노동 유연성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다소 개선됐지만 노사 관계는 여전히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노사 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점에서 극을 달하다가 2만 달러가 되면 안정 국면에 들어간다”며 “한국노총은 물론 민주노총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올해가 새로운 노사 관계를 구축할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번 시리즈의 제2부는 오늘자로 끝내고 제3부 ‘최후의 보루, 재정이 흔들린다’를 다음달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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