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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퉤,퉤,퉤 도루묵!

제목// 퉤,퉤,퉤 도루묵!

송태권 논설실장

songtg@sed.co.kr

피란 길 임금님이 난생 처음 ‘목’이라는 생선 맛을 봤다. 시장기에 하도 맛있어‘ 은어(銀魚)’라는 고상한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나 궁에 돌아가 은어를 시켜 먹었지만 옛 맛이 아니다. 기분이 상한 임금은 “도로(원래대로) 목이라고 해라”고 했다. 지금의 도루묵이다.

저축은행들이 우수수 날라갔다. 저축은행 100개 중 20개가 문을 닫았다. 환부를 도려내는 이른바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위에서부터 1,2,3,4,5위가 모조리 불량했다고 하니 헷갈린다. 대한민국 5대 저축은행이 모두 엉터리였다니… 세상이 거꾸로 서있었나.

우량 저축은행들을 족쳐서 허위자백을 받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드는 까닭은 뭘까. 이성적 셈법이 작동하다가도 왜 씁쓸한 감정 같은 것이 스며드나. 오너들의 파렴치에 화가 치밀면서도 저축은행(업계)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언젠가 손에 통장 같은 것을 쥐고 흐뭇한 표정으로 저축은행 문을 나서던 추레한 노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모른다. 저축은행 무더기 퇴출의 최대 피해자는 말없는 서민, 영세상인들이다. 이번 사태 이후 돈 맡길 곳도 빌릴 데도 더 줄어버렸다. 1%포인트 더 주는 이자가 너무 값져서, 은행보다 10%포인트 대출이자 더 물어야 하지만 그거라도 다행이라며 저축은행을 찾던 사회적 약자들이다. 저축은행의 총여신규모는 1년 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다. 저축은행으로 갈 돈이 일반은행으로 몰려 예금이자는 더 떨어질 판이다. 서민들에게 지금 금융환경은 첩첩산중이요 사면초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서민 호주머니에서 나간 국민세금 중 또 몇 조원이 이번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저축은행을 키우고 망가뜨리는데 가세한 사람은 누군가. 청와대 수석비서관, 감사원 감사위원, 국회의원, 금융감독원장, 지방경찰청장, 대검 부장검사, 고법 판사, 군참모총장, 장관, 차관들이 현직 또는 전직으로서 엄호 비호했고 방조 방관했다.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저축은행 오너가 던져준 떡고물, 아니 그것도 못 되는 수당 정도를 받고 전방위에서 일꾼 노릇을 해주었다.

이제 그들은 꼬리 감추기에 급하다. 서민들의 고통에 책임 있는 그 누구의 입에서도 사과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몸을 낮춰 석고대죄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낯 뜨거운 줄 모른다. 오히려 오물의 흔적을 지우는 뒤처리를 도모하려는 모양이다. 정책당국, 감독당국의 책임자,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저축은행 명칭을 다시 옛날(상호신용금고)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해야겠다”고 나섰다.

피해 서민들에게 정신적 보상은커녕 자존심까지 빼앗아가려 하다니! PB점은 아니더라도 은행이나마 다닌다는 서민들의 으쓱한 기분을 알기나 하는지? 설마 “당신네들 수준에서는 금고면 충분하지!”라는 게 당국자들의 심리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이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님은 그들도 알 것이다. 10여 년 전 감독당국의 국장 자살로 이어진 정현준게이트를 비롯한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는 저축은행이 아니라 상호신용금고에서 터졌다.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을 없애면 의도했던 안 했던 얻는 게 있다. 모든 죄과는 오로지 저축은행이 탓이 된다. 공동의 전과기록이 세탁되고 개똥이가 다 잘못한 것이다.

키워서 뜯어먹고 퉤, 퉤 뱉어내고 도루묵! 정권안정을 위해, 정책편의에 따라 저축은행을 조자룡 헌칼 쓰듯이 써먹고서는 내버린다. 그 바람에 40년을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본분을 지켜온 선량한 저축은행들까지 불명예를 뒤집어쓴다. 수천 명의 저축은행 종업원들도 덩달아 개똥이가 된다. 만약 그게 징벌이라면 저열하고 유치하다. 연장 탓하는 서투른 목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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