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리콜이 되는데 인재는 대학에 리콜을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보증되지 않습니다." 10여년간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학교육에 일침을 가했다. 적어도 학생들이 전공 분야에 대한 기초는 튼튼히 쌓고 졸업을 해야 하는데 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 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 서울시내 주요 10개 대학의 619개 학과(졸업 이수학점과 전공과목 이수학점이 동일한 일부 의학과 제외)의 평균 졸업 이수학점은 136학점으로 이중 전공과목 이수학점은 평균 59학점이었다. 전공실습이 중요한 이공계 학과를 제외할 경우 인문ㆍ사회ㆍ상경계열의 평균 전공과목 이수학점은 이보다도 훨씬 낮은 45학점대에 그쳤다. ◇졸업정원제, 대안 될 수 있을까=이 같은 전공교육 부실이나 대졸 실업자 증가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각에서는 '대학졸업정원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졸업요건을 엄격히 평가해 '대졸자 인플레이션'을 막고 전공지식 습득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81년 시행됐다가 사라진 대학졸업정원제는 졸업정원 대비 30% 많은 신입생을 받되 학기당 학점 평균이 일정 점수 이하거나 학사경고가 누적된 학생의 30%를 제적 처리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30%를 중도에 탈락시키는 시스템하에서 대학 내 이기주의, 탈락을 우려한 학생들의 자살시도 등 문제가 불거져 1985년 폐지됐다. 졸업정원제 재도입에 대한 교육계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취지는 좋지만 1980년대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재 대학의 구조에서 같은 제도를 시행하면 과거의 부작용이 재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추상적이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졸업정원제 같은 강제적 도구보다 철저한 학사관리에 대한 교수들의 양식"이라며 "엄격하게 질 높은 강의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도 "어느 정도의 긴장이 채찍질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강제의 성격을 강하게 띠기 때문에 대학 현장에 제대로 정착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런 이유에서 1980년대에도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품질보증제 움직임 활발=문제는 취업률이 대학 평가의 주요 잣대가 되는 현실에서 대학들이 '오로지 학문'만을 외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 모 대학의 한 관계자는 "학문 본연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면서도 언론에서 취업률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평가를 공개하면 사람들은 그 내용에 관심을 쏟는다"며 "필수 이수 전공학점을 늘리거나 졸업정원제와 유사한 강제적 성격의 조치보다는 강의 품질을 개선하고 수업 내용을 취업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이 현재로선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학부 교육인증ㆍ평가를 활성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시립대는 '자체교육인증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35개 학과 중 10개 학과가 공학교육 인증, 건축학교육 인증, 경영학교육 인증 등 외부 교육인증을 받고 있는 시립대는 대학 교수, 기업인, 외부 전문가 및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자체교육인증원을 통해 오는 2014년까지 전학과에 대한 인증평가를 실시할 방침이다. 인증원장인 이중원 철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핵심역량과 전공특화를 통해 학부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며 "교육목적과 전공별 특수성을 반영한 인증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성균관대도 '대학교육효과성센터'를 신설해 학부 교육의 질을 개선해나갈 방침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홍후조 교수는 "국내에서 진행 중인 공학교육인증제도처럼 대학별 학습과정과 강의ㆍ커리큘럼 등의 품질을 측정하는 노력이 학부교육 내실화를 꾀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다만 각기 다른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을 단일화해 국내 대학들만이라도 단일 기준으로 교육품질을 측정할 수 있어야 인증에 대한 신뢰가 쌓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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