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석(49·사시24회·사진) 에버그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내 도산분야 원년멤버로 통한다. 90년대초 도산분야 변호사라고 해봐야 김인섭(현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 대표변호사) 변호사 등 4명 정도에 불과할 때, 그도 도산분야에 손을 뎄다. 박 변호사는 원래 '경제학'이 전공이어서, 첫 출발은 85년 세종에서 기업법무와 조세분야 일을 담당했다. 그러다 94년 미국 유학 후 귀국에 즈음해 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기업도산이 급증하자, 자연스레 이쪽 일을 많이 맡게 됐다. ◇97년부터 2년간 150개 기업 담당= 도산분야 전문가가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조세분야가 전공이라 재무쪽에 익숙'했던 것이 그가 도산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기회가 됐다. 유학 때 쌓은 도산법 지식뿐 아니라 기업의 재무제표를 한눈에 보고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도산 전문 변호사의 업무 특성이 경제학을 전공한 박 변호사에게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박 변호사는 97년 말부터 눈코 뜰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면서 모든 사건이 그에게 몰려 왔기 때문이다. 대농그룹, 한일그룹, 국제상사, 기아자동차그룹, 쌍방울, 통일그룹 등등. 97년 말부터 99년까지 그가 맡아 처리한 큰 기업들만 해도 150개가 넘을 정도다. 이는 매월 평균 6개 기업의 회생과 파산을 처리한 셈이다. 특히 경영난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에 넘기는 과정에서는 '청산형 회사정리'라는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청산형 회사정리란 회사 자체를 청산해 해체한 뒤 남은 자산을 타회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식만을 넘겨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제3자 M&A'와 달라 당시에는 혁명적인 기업정리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처럼 일이 몰리다 보니 박 변호사는 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봤지만, 일할 시간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습관된 후 박 변호사는 지금도 새벽 5시만 되면 눈을 뜨는 '아침형 인간'이 됐다. 박 변호사는 "잠이 없는 게 나의 큰 경쟁력"이라며 웃었다. ◇통합도산법 탄생에 기여= 박 변호사는 통합도산법 탄생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세계은행이 2002년께 국내 통합도산법 제정을 지원하기 위해 100만달러를 지원했고, 법무부는 박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세종과 미국의 컨설팅회사 아서앤더슨 컨소시엄을 최종 선정했다. 이 때문에 박 변호사는 법제정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 통합도산법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통합도산법이 시행되자, 빚을 탕감받기 위해 개인회생을 신청하겠다는 채무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박 변호사는 이때부터 개인회생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됐다. 서민들을 대상으로 개인회생제도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인터넷 카페 '박 변호사의 개인회생'을 개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서울지역 개인회생 신청 10건중 1건은 박 변호사가 도맡았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심지어 법원에서 판사나 직원들을 상대로 개인회생제도에 대해 내부교육을 할 때도 박 변호사의 인터넷 카페를 참고할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은 박 변호사는 개인회생 분야가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예감하고, 몇몇 동료 변호사들과 개인회생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밝은미래 법률사무소(2007년 에버그린 법률사무소와 통합)를 설립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곳이지만, 개인회생 사건을 다루다 보니 고객층의 변화가 생겨 할 수 없이 독립을 결심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박 변호사는 "빚더미에 눌린 개인들의 회생을 도우면서 변호사로서 진정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를 통해 자살까지 시도했다가 개인회생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고객도 수없이 많다. 박 변호사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건넬 때 '정말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소아마비도 극복한 인간승리= 박 변호사는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 일상생활에는 전혀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사회의 선입견은 그를 번번히 좌절하게 만들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사회는 아직 그의 단순한 꿈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때 취직 준비를 중단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는 "변호사는 장애여부와 무관하게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사실은 고시공부에 열중하는 법대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듬해 보란 듯이 차석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함께 시험을 쳤던 친한 법대 동기들은 "결과가 잘못된 게 아니냐"며 시샘반 농담반 할 정도였다. 박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수료와 함께 판ㆍ검사보다 법무법인 세종으로 들어가 변호사 생활을 바로 시작했다. 호구지책으로 선택한 길이었던 만큼 판ㆍ검사에 대한 미련은 상대적으로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 의외로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겸손해 하는 그는, 국내에서 법리나 실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산전문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조만간 변호사 30여명을 거느린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가 될 예정이다. 그는 은연중에 에버그린을 중견 로펌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도 내보였다. 그는 "로펌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실력파 변호사를 영입해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할 계획"이라며 "몇 년 내 이름을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업무처리 자동화로 수임료 절반"= 박 변호사의 에버그린은 모든 사무업무가 거의 자동화돼 있기로 유명하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소송업무에 자동화가 가당하냐는 의문이 들지만, 박 변호사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기업 재무관련 수치만 입력하면 기업을 청산해야 될 지, 유지해야 될 지 결과가 곧바로 나온다. 개인회생의 경우도 의뢰인의 재무상황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법원에 제출해야 할 관련 서류가 자동적으로 작성되는 식이다. 이렇게 자체 개발한 컴퓨터 재무분석 프로그램 등으로 자동화에 나서다 보니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수임료를 경쟁 로펌에 비해 절반 수준에 맞출 수 있는 것도 자동화라는 '비밀병기' 때문이다. 업무처리가 자동화됐다고 해서 고객과의 상담을 절대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로 시간을 아낀 만큼 고객상담 시간은 그만큼 더 늘렸다. 박 변호사는 "서류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한 줄이는 대신, 고객과는 반드시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교환한다"며 "특히 파산이나 회생사건의 경우 고객의 처지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정확한 자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충실한 상담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데 푹 빠졌다. 과거에도 불었던 경험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아 최근에는 수시로 과외교사를 붙여 개인레슨을 받는다. "25년간 변호사로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음악회에서 연주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손꼽히는 도산전문가에서 지금은 개인회생 전문가로 파산에 몰린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불어넣어 주는 박 변호사.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정상급 수준이 될 때, 그는 또 한번의 성공시대를 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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