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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졸자 생산직 채용… '고졸 일자리 빼앗기' 논란

학력차별 해소정책의 역설

인권위 권고로 7월부터 시행… 현대차 등 채용방식 변화에 부담

일부선 "청년 실업난 해소" 환영

"생산직 전문성 저해" 우려도


'학력차별 해소냐, 고졸 일자리 빼앗기냐.'

4년제 대졸자의 제조업 생산직 채용 여부가 산업계의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대기업이 생산직을 채용할 때 대졸자를 배제하고 고졸 위주로만 뽑는 것은 역(逆)차별"이라고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인권위 권고에 따라 정부는 7월 '고용정책기본법'을 개정하며 취업시 차별금지 요소로 성별·신앙·연령·신체조건 등의 기존 항목 외에 학력을 새롭게 추가했다. 이후 산업계의 쟁점은 '고학력자 우대에 따른 차별'보다는 인권위의 권고를 촉발한 사례처럼 '고학력자 배제로 인한 역차별'에 모이고 있다. 제조업종의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생산직을 뽑을 때 고졸·전문대 졸업자 등에 한정해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생산직 근로자 채용시 '고교·전문대 졸업자 및 동등학력 이수자'를 지원 자격으로 내걸고 있으며 정유회사인 GS칼텍스도 비슷하다. 삼성그룹 역시 대다수 라인 근무자들은 4년제 대졸자를 배제한 채 채용한다. 물론 정부는 주관적 평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채용의 특수성을 감안해 관련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벌금 등으로 제재하는 규정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지만 기업으로서는 법에 맞춰 생산직 채용기준을 바꿀 경우 '고졸 일자리를 빼앗는 조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곤욕스러운 입장이다. 이른바 '학력차별 해소의 역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법 개정 취지에 맞춰 생산직 채용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공업고나 마이스터고 등 특수교육기관에서 전문기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위주로 뽑아온 기존 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노동계를 비롯한 기술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은 쏟아진다. 고졸 취업률 향상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생산직의 전문성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고졸 채용 열풍이 일면서 2008년 한때 62.3%까지 올랐던 고졸 취업률은 지난해 61.1%까지 떨어진 상태다.

황선자 한국노총 선임 연구위원은 "학력이든 재산이든 유무형의 자산을 가진 자를 우대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의 진짜 의미"라며 "대졸자의 생산직 채용은 국가적 낭비일뿐더러 고용 시장을 더욱 살벌한 전쟁터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이스터고인 미림여자정보과학고의 장병갑 교장도 "(생산직 지원요건 확대는) 고졸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공감대에 찬물을 끼얹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산직의 전문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인권위의 권고와 정부의 법 개정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학 진학률은 치솟는 데 반해 청년 실업난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특정 분야의 일자리를 학력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만큼 시정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흔히 얘기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소수 명문대생들이 독차지하고 있지 않았느냐"며 "생산직 채용범위 확대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신(新)사각지대'를 상당 부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고졸자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1993년 당시만 해도 38.4%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0.7%로 급증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위원도 "고졸 채용을 활성화해 과잉학력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전제"라면서도 "이를 빌미로 취업 시장에서 학력에 따른 우대 또는 배제를 용인하는 것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할 잘못된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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