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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우의 실패는 모두의 책임이다
입력1999-09-06 00:00:00
수정
1999.09.06 00:00:00
90년대 들어서서 대우가 세계경영을 선포하고 이것이 될성 싶은 경영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우에는 여러가지 찬사섞인 별명이 붙었다. 그중에서 나는 「21세기 봉이 김선달」이라는 별명이 대우식 경영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봉이 김선달은 지략이 특출하고 하는 일이 파격적이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일단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면 이를 과감히 실천해서 틀림없이 실익을 얻어내곤 했다.
당시 대우에 기립박수를 보내던 분위기에서 굳이 긍정적인 어의보다는 부정적인 뜻이 더 많이 담겨져 있는 봉이 김선달이란 별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마도 대우의 경영에 적지않게 함유되어 있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결과적으로 대우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밀랍의 날개를 달고 무모하게도 태양을 향하여 날아오르다가 고열에 날개가 녹아나리고 급기야는 추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얼마 전만해도 대우는 업계에는 부러움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꿈이었다. 세계 기업들에게는 질시와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대우의 세계경영에 대해서는 정부관료, 기업인, 학자들까지도 입을 모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불과 몇 달을 사이에 두고 대우와 이 그룹 총수인 김우중 회장에 대한 평가는 가위 표변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남을 평가하는 일에 자주 양분법적이고 편협하다. 대우와 김우중 회장을 평가하는 일에도 또한번 그러한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나 싶다.
얼핏 보기에 대우가 다른 재벌기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경영지평을 방만하게 넓힌 것, 그것도 빚을 얻어서 충당한 것이 그렇다. 그런데 왜 유독 대우는 망해야하고 다른 재벌은 그대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대우가 추락한데는 크고 작은 이유가 있다. 첫째, 구시대적 한국적 경영방식의 답습이 문제였다. 대우는 국내 어떤 기업보다도 경제경영의 세계적 동향을 파악하는데 민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인수할 기업을 찾고 진입할 시장을 개발하는데 쓰였을 뿐 막상 경영방식을 개선하는데 활용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대우가 동구권을 비롯한 저개발국 시장을 선호한 것도 이곳에서 구시대적 경영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 대우는 기술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핵심역량을 보유하는 것은 열린 시장에서 전략적 경영의 기본이다. 물론 대우라고 이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었다. 그리고 대우 세계경영의 틀 안에는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물론 동구의 첨단기술을 얻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핵심역량의 개발을 위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진입한 초기의 저개발 시장을 공략하는데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던 점도 이 과제와 관련해서 대우를 안일하게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셋째, 유동성 관리의 실패는 대우를 어렵게 만든 가장 결정적이고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지나친 차입경영은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공통된 문제였다.
이들은 70년대 이후 고도성장 과정에서 차입경영의 위험성에 대한 불감증을 얻게 되었으며 대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대우는 서유럽등 선진국 은행으로부터의 차입 비중이 높았고 따라서 대우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빚에 대하여 우리 정부의 보호를 받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IMF사태로 외국금융기관들이 한바탕 혼이 난 터라 그 이후에 찾아온 대우사태에 가일층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넷째, 대우의 세계경영이 미처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일구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우는 폴란드에 투자한 자동차 부문에서 그런대로 고무될만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동남아, 그리고 인도등 기타 지역에서는 기대에 밑도는 성과를 올렸을 뿐이다. IMF사태로 기름기가 빠진 동남아 시장과 EU 통합에도 불구하고 살아나지 못한 유럽시장에도 일단의 원인이 있었겠지만 세계경영의 네트웍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데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사실 대우의 사업장은 98년 말까지 589개로 늘어났지만 이들이 실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실하게 시너지효과를 거두는 단계에까지 이르는데는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대우에 대한 선진국의 견제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프랑스 제일의 가전기업을 인수하려고 할 때 부터, 세계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선진국 기업들이 망설이는 시장을 과감하게 치고들어가 선점할 때 부터 대우는 세계기업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우는 경계의 대상으로, 그리고 마침내 견제의 상대로 부상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세계경영의 위세는 대우는 물론 한국경제에 대한 선진국의 다각적 견제로 반향되었다. 특히 자동차에 대한 견제가 두드러졌다. 그도 그럴것이 자동차는 미국을 비롯해서 독일, 불란서, 이태리 등 선진국의 자존심이 걸린 업종이 아니겠는가.
위에서 대우가 실패한 큰 원인 몇가지를 들추어 보았다. 그러나 30여년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무너지는데 그 이유가 어찌 이것들 뿐이겠는가.
정치자금을 뜯어낸 정치인, 온갖 규제를 거미줄처럼 쳐놓고 뇌물을 거두어 들인 공무원, 꺾기와 커미션을 강요한 금융기관, 생산성을 웃도는 노임을 달라고 떼쓴 노조, 온갖 연줄을 대어 기부금을 받아낸 대학과 사회단체, 광고를 강매한 언론. 이중에 누가 감히 「나는 대우의 기울어짐에 책임이 없다」고 강변할 수 있는가. 누구라서 대우에 조그만 돌멩이 하나라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대우의 몰락에 공범인 것이다. 대우 스스로가 지어낸 실패의 원인과 사회가 제공한 원인들이 아울러 제거되지 않는한 제2의 대우, 제3의 대우가 속출할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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