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조급증의 비경제성
입력2003-11-06 00:00:00
수정
2003.11.06 00:00:00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일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부정부패, 부실공사, 지역갈등, 정경유착 등등…. 이런 병폐의 기저를 흐르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조급증이 아닌가 싶다. 이런 조급증은 식당문화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요즘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주문한 지 10분이 넘으면 종업원을 바라보는 눈빛과 말투가 달라진다.
물론 이런 조급증은 순기능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가 역동적이라고 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런 조급증이 큰 힘이 됐다. 전화보급이 늦었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휴대폰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고, 인터넷수준이 세계최강으로 발돋움한 배경에는 조금을 참지 못하는 성급함이 큰 밑거름이 됐다. 조급증은 압축성장으로 대변되는 한국경제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반세기만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자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급증은 더 많은 역기능을 초래한 게 사실이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조급한 마음은 사회 각 분야에 단기적인 현상만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의 상품생산에서 마케팅, 소비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장기보다는 단기위주다. 그러다 보니 3년이 지나면 구형제품의 소모품을 구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단기투자, 속칭 단타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바로 조급증 때문이다.
국민정서가 이처럼 `내일 일은 나몰라요`식으로 깊게 박혀 있다 보니 정부의 정책결정도 정책운용도 모두 대증적이고, 인기영합적이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는 커녕 십년대계도 없다. 경제정책도 너무 냉탕온탕이다. 빨리빨리정책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요즘 수도권 주민들이라면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부동산정책은 10년 주기로 규제와 촉진책이 반복된다. 그 반복의 주기를 잘 타는 눈치 빠른 사람들은 쏠쏠한 재미를 보겠지만 대부분은 피해를 보고 있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지원에 이은 규제만 봐도 그렇다. 부동산경기가 죽을 쑤던 1999년 경기를 살려보겠다고 정부가 내놓은 게 임대사업활성화였다. 당시 정부는 각종 세금을 깎아주며 쉽게 말해 약간의 투기를 부추겼다. 그런 정부가 이제는 집값이 너무 뛰었으니 임대사업을 하려면 세금도 더 내고 다섯채 이상을 굴리라고 한다. 서민들의 주거안정과 약간의 재산증식을 위해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조세원칙을 무시하고 도입한 1가구1주택의 양도소득세도 받겠다고 한다. 일부 투기꾼들 때문에 수많은 보통사람들까지 고통을 분담하도록 한 것이다.
어느 쪽의 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차분하지 못하고 항상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위태로운 것은 바로 조급증 때문이다. 국민들이 조금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니 정부정책이 그에 따라 가고, 정부정책이 냉탕온탕식이니 국민들도 덩달아 우왕좌왕한다.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인 셈이다.
조급증은 단시간에 자원을 투입하고 성과를 거둬야 했던 압축성장시대의 산물이다. 부정부패도, 정경유착도, 새치기문화도 그 때문에 생겼다. 이제 우리는 조금은 성숙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그렇게 국민을 괴롭혔던 정치도 환골탈태하려 하고 있고, 기업들도 투명성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정책도 예전보다 몰라 보게 달라졌다. 밀실행정이라는 단어는 이제 박물관에 보관됐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바쁘다` `빨리빨리`로 압축되는 질주와 가속도의 시대를 살아오며 부실과 졸속으로 크게 망가졌다.경제도 국민생활도 마치 호랑이 등을 타고 질주하듯이 달려왔다. 이제는 그 모순과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 압축파일에 숨겨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다.
<김희중(경제부장)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