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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8월 22일] 중화주의와 혐한바람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해 다시 한번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는 그의 히트작 ‘황후화’를 선전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에 맞서 아시아가 힘을 모아야 한다.” 언뜻 들으면 서구의 패권에 맞서 아시아의 힘을 보여주자는 그럴듯한 말로 들리지만 기자에게는 언뜻 일본 제국주의 시절 ‘대동아공영권’의 이미지가 연상됐다. 다소 상상력이 비약했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중국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과거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서구 열강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본과 조선ㆍ청나라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정한론’ 등 패권주의로 발전했던 경험이 있는데 장 감독의 말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 감독은 원래 ‘붉은 수수밭’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영웅’ 등 무협영화를 잇따라 내놓아 예술감독에서 흥행감독으로 변신한 인물이다. 장이모판 ‘무협영화’는 한족의 자랑인 진나라ㆍ당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삼으면서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의 색깔이 아주 진하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아시아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실천에 옮긴 그런 흔적도 없다. 자신의 영화를 선전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던 장 감독은 “한국 배우를 쓸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의례적인 질문에 “한국 배우들이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전에는 힘든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중국 드라마에는 한국 배우들이 주연급으로 무수히 얼굴을 들이 밀어 현지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요즘 베이징올림픽이 한참이지만 중국에서 때 아닌 ‘혐한(嫌韓)’ 바람이 요란하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이 붙은 야구 경기에서 중국인들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LG의 중국 시장 지배를 끝장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 반한ㆍ혐한 감정이 중국의 경제력이 확대되는 속도에 비례한다는 점에 있다. 중국이 1등을 달리고 있는 베이징올림픽이 그 같은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는지도 모른다. 한중 친선협회 소속 여야 의원 다섯명과 함께 최근 중국을 방문해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면담하고 돌아온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중국에서 혐한 감정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엠바고를 깨고 국내 모 방송국이 방송한 것과 쓰촨성 대지진 때 한국인 네티즌들의 악플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堀起)를 넘어 지도력을 보이기 위해 민족주의를 고양하고 배타적인 희생양이 필요한 데 여기에 우연하게 우리가 희생양이 돼가고 있다”며 본질적인 우려를 제기했다. 이 같은 중국 내 분위기는 최근 한중 간의 정상급 만남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한국 방문을 앞두고 현지 한국 특파원들과의 의례적인 기자회견도 거부했다. 지난번 일본을 방문하기 전 요란스럽게 우호 분위기를 띄운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감정적으로 나서서 문제가 해결될 일은 아니다. 가령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논법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헤어질 수 없는 관계라면 지금부터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ㆍ확대ㆍ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 중국 관계는 ‘한류’ 등 일시적 유행만 바라보며 안주하는 주먹구구식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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