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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불황 파고 넘어라" 극기훈련으로 변화·혁신 의지 키워

■ 태광산업 직원 대상 1박2일 야생체험 현장 가보니…<br>기업은 인재 이탈 손실 줄이고 직원은 '뭉치기' 통해 애사심 높여<br>기업문화 모범사례 평가 속 "이벤트 그칠것" 회의적 시각도

경기 불황 속에 변화와 혁신을 위해 태광그룹이 처음 마련한 극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들이 통나무집을 짓고 있다. /사진제공=태광산업

"변화! 혁신! 우리가! 해낸다!"

전날 내린 비로 한층 차가워진 바람이 쌩쌩 몰아치던 19일 오후 4시 경기도 양평의 미리내 캠프. 77명의 남녀가 형형색색의 조끼를 입은 채 어깨 동무를 하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교관의 우렁찬 선창에 따라 구호를 내지르며 왼쪽·오른쪽 번갈아 발걸음을 옮긴다.

강인한 해병대원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장도, 말썽부린 학생들을 벌주기 위한 기합장도 아니다. 지난 1950년 처음 닻을 올린 태광그룹이 창사 62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한 '위기극복 변화혁신 교육'프로그램 현장이다. 태광그룹은 최근 불어 닥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희망퇴직 대신 전 직원이 참여하는 극기 훈련을 선택했다.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이 일반 사원은 물론 대리·과장과 임원까지 1박2일을 함께하며 야생 체험과 라펠(rappel)의 담력 훈련을 진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다.

이 같은 프로그램 도입 취지에 대해 인사·교육 담당 이성배 전무는 "세계 경제의 침체와 국내 경제의 불황으로 2012년은 어느 해보다 어려운 상황이고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며 "이러한 위기 극복과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전 임직원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의지와 실천적 자세"라고 설명했다.

태광산업의 영업이익은 ▲2008년 120억 원 ▲2009년 1,705억 원 ▲2010년 4,000억 등으로 꾸준히 늘었지만 지난해 2,592억 원으로 감소한 후 올해(9월 기준)는 무려 4,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박수정 컨설턴트는 "이직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보면 조직 내에서 비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대다수"라며 "기업에서도 인재 이탈로 인한 손실이 큰 상황에서 뛰어난 인적 자원을 보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컨설턴트 "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소속감 향상과 강력한 팀웍 형성으로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태광그룹 계열사의 하나인 태광산업의 직원들은 10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6번째로 진행된 지난 19~20일엔 77명이 참여했다. 태광산업의 김여일 홍보실장(상무)은 "다음 달까지 태광산업 직원의 훈련 참여가 끝나면 내년 2월부터 상반기 안에 흥국생명과 티브로드 등 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예산은 한 명당 25만 원으로 무려 10억 원 가량이 투입된다.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은 19일 77명의 직원들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부터 밤에 몸을 뉘일 거처 마련을 위해 조를 나누어 통나무 집 짓기에 나섰다. 수십 개의 자재를 퍼즐처럼 그야말로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작업.



직원들은 도면을 보며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자재를 쌓았다 허물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어느 순간 아귀가 딱 맞는 볼트와 너트처럼 조원들의 호흡과 맥박이 서서히 일치하기 시작하면서 아담한 통나무집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교육에 참석한 3명의 임원 중 1명인 태광산업 울산공장의 김재화 감사는 "모름지기 교육은 혹한 아니면 혹서 아래서 해야 기억에 남는 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설비투자팀에서 근무하는 강기훈 대리는 "여기저기서 희망퇴직이나 구조조정 소식들이 들려오는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 회사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대내외적 경기 불안 속에서 태광은 '제살 깎기'가 아닌 '뭉치기'를 통해 불황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 10명이 다닥다닥 붙어 모포를 깔고 침낭 속으로 제 몸을 숨겼다. 칼 바람이 나무 틈새를 파고들고 피곤에 지친 이의 코 고는 소리로 모두들 잠을 뒤척였다. 아무렴 상관 없었다. 곁에 바싹 붙어 누운 동료의 온기를 느끼며, 하루 동안의 추억을 음미하며 그렇게 밤이 저물어 갔다.

다음 날 오전엔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0~11m 높이에 올라가 로프를 달고 뛰어내리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담력 훈련이 이어졌다. "장하다!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미션을 완수한 이도 있었지만 눈물을 훔치며 낙오한 직원도 있었다.

영업팀의 이한성 과장은 "몸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요즘 추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전적인 방법"이라면서도 "땀을 흘림으로써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깨닫게 한 교육을 통해, 또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체험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되는 화합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내년 상반기에 다른 계열사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면 당장 그 다음부터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지속될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대기업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범 사례가 되기는커녕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태광산업 홍보팀의 선근형 과장은 "이제 시작단계이니만큼 직원들의 반응과 호응도를 살펴서 지속성이 담보되는 좋은 기업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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