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국 오케스트라에 스카우트되거나 세계적인 페스티벌에 지휘자로 가거나, 국제음악제에 초청돼 간다든지 하는 그런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작은 시골마을 같은 데서 공연하고 거기에 참여한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지휘자 금난새(65ㆍ사진)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우선 "요즘 얼마나 바쁘시냐"고 물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복합문화공간 라움아트센터 예술감독,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고경영자(CEO) 겸 음악감독,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KUCO) 지휘자, 창원대 석좌교수, KBS 해피선데이 패밀리 합창단 지휘자로 TV출연까지 방대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였다. 그의 일정표에 빈칸이 있을까 싶었다.
그는 "클래식음악은 현대인에게 좋은 공기와 같은 것"이라며 대뜸 가방에서 브로셔 하나를 꺼냈다. 지난 2005년부터 7년간 해왔다는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이다. "클래식에서 실내악은 과학부문에서 기초과학 같은 거예요. 원래 클래식음악은 실내악에서부터 발달해온 것이죠. 그런데 국내 음악계에서는 실내악은 발달되지 않았고 관객들도 오페라나 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대형음악회에만 몰립니다. 편식해온 거죠. 그래서 제가 제주도에서 매년 2월 실내악 중심인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을 해왔던 겁니다."
그 동안 클래식음악의 확산을 위해 바쁘게 일해왔고 현재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하는 듯 했다. "지난 5월 뉴욕에 있는 스타인웨이홀에서 '맨하탄챔버뮤직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예요. 클래식분야에서도 한류을 만들어보자는 시도였죠. 문화와 외교, 음악이 합쳐진 음악회였어요. 뉴욕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유학하러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인데'맨하탄챔버뮤직페스티벌'은 우리 클래식을 뉴욕에 역수출해보자는 시도인 거죠. 그래서 앞으로 매년 그 행사를 진행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역발상'인 거죠."
지휘자 금난새는'클래식음악=좋은 공기론(論)'이란 공식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가 살아온 세계는 그동안 급속도로 확장하고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중요한 것입니다. 음악은 그런 측면에서 현대인의 삶에 소프트웨어인 셈이고 삶에 필수적인 좋은 공기와 같습니다. 도시인들은 평소 좋은 공기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지만 주말에는 좋은 공기를 맡으러 산에 가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클래식음악은 바로 도시인들의 좋은 공기라는 것이죠."
그는 이 대목에서 "그동안 좋은 공기를 독점해서 나만 가질 게 아니라 주변에 선물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도 했다. "음악의 목표는 관객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제 음악도 행복이라는 좋은 공기를 관객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음악활동을 해왔습니다"
'클래식음악은 좋은 공기다'는 지론은 국내 클래식 대중화의 선구자라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던 그를 잘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금 지휘자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독일 캄머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경기필하모닉, 인천시향 등의 지휘자를 맡아왔고 1994년부터 20년 가까이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 '마라톤 음악회' '도서관 음악회' '로비 음악회' 등 연주 장소를 파괴한 다양한 형태의 음악회로 클래식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써 온 음악인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최초 벤처오케스트라를 창립했던 주인공이고, 클래식 입문서들도 왕성하게 저술해가며 일반인들이 쉽게 클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왔다.
겉으로 부드럽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발길을 한군데 매어 두지 않는 야생마 기질도 있었다.
KBS에 있으면서 다른 교향악단을 도와준다는 것이 문제가 되자, 그는 수원시향을 택해서 떠났다. 수원시향 임기 말에도 단원 오디션 실기평가와 함께 유라시안필의 출연료가 문제 되자, 스스로 경기필하모닉으로 옮겼다. 그리고 2010년부터 인천시향 예술감독으로 현재까지 일해오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했던 KBS 해피선데이의 패밀리 합창단 지휘자로 출연하게 된 것도 '클래식 대중화'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그는 "청중에 다가가자는 의미로 결심했고, 모든 분야가 발전하려면 다른 분야를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분야를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이 방송이나 출판계에도 기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동안 음악을 내 중심이 아니라 청중의 입장에서 해왔어요. 내 음악행보의 최고선(善)은 관객의 행복입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는 그 같은 제 철학이 반영돼 있는 거죠. 요즘 반응이 좋아 출연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했어요."그는 이 대목에서 "음악은 높은데 있는 게 아니고 생활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도 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외로운 길이다. 금난새에게 지휘자와 CEO의 공통점이 경영계에서 많이 회자된다고 하자 "두 직책이 모두 다양한 악기와 인물들을 하나의 하모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작품을 해석하고 큰 방향을 잡으며, 조율하고, 지적하며 나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모니를 목표로 안 되는 것을 되 게하고, 불균형이 있으면 균형 있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 거죠. 기업CEO도 임직원들이 힘을 합치도록 지난(至難)한 설득의 과정을 이뤄가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 예로 자신이 현재 이끌고 있는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KUCO)를 거론했다. KUCO는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KAIST 포스텍 등 30개 대학의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130명의 학생으로 구성됐고 금씨는 KUCO를 이끌고 매년 정기연주회까지 열고 있다.
"카이스트나 일반대학 기계공학, 국제학 등 평범한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데 연주회 때마다 기립박수를 받고 있죠. 한번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이 그 연주회에 참석 한 뒤 '금난새 선생이 지휘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전공과 수준에 있는 일반 대학생들을 하모니로 엮어내는 것은 현재 UN사무총장의 역할과도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CEO와 오케스트라지휘자,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요."
금난새는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덕(德)을 베풀며 산 음악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은 셀피쉬(Selfish), 즉 개인주의적인 측면도 갖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그러나 거기서 머물면 안 되지 않겠어요. 남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더 노력해서 좋은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더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삶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그렇게 살아왔구요."
금난새는 신년계획을 묻자 "인천시향 예술감독으로 인천에 음악페스티벌을 만들어 축제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주변에 앉아있던 한 여성이 싸인지와 펜을 들고 찾아왔다. 노(老)지휘자는 친손녀를 맞이하듯 반갑게 싸인을 했다. '부의 격차보다 무서운 건 꿈의 격차'라는 게 최근 우리 사회가 주는 메시지다. 금 지휘자는"음악을 통해 행복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철학을 다양한 형태로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금난새가 걸어온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