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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보호주의의 곡예

톰 플레이트 칼럼니스트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단순히 카터 전 대통령이 야당의 핵심 인물이라서, 또는 부시 대통령 자신이 먼저 쿠바에 발을 디디길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의 심기를 가장 건드리는 것은, 카터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입장이기 국내 정세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전세계에서 희한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복잡한 국내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플로리다주에는 약 83만3,000명에 달하는 반(反)카스트로 쿠바 망명객이 거주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무려 25건의 선거가 열리는 주(州)인데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이 지역에서의 근소한 표 차이가 승패를 가른 이후로는 누구도 무시못할 정치적인 중요성을 띠는 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미국의 대(對)쿠바정책은 선거정치의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 기업들은 카리브해 연안에서의 사업 기회를 넓히기 위해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이 정치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쿠바에 손을 내밀만큼 이 나라의 시장 잠재력이 크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미국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비르지스탄, 타지키스탄 등 극도로 억압된 사회구조를 지닌데다 소득분배면에서도 쿠바보다 훨씬 심한 불공정이 자행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쿠바에 대한 고립정책을 고집하는 것이 모순된 정책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사실 대쿠바정책은 미국에게서 엿볼 수 있는 모순된 정책의 일례에 불과하다. 가령 미국이 자국의 편의에 따라서 선별적으로 자유무역 원칙을 들먹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자유시장주의의 복음을 설파하고 정부가 보호하는 취약한 산업을 자유경쟁의 세계로 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전도하는 내용을 항상 실천하지는 않고 있지 않은가. 부시 행정부는 녹이 슨 미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있으며, 농업지역 출신 의원들의 재선을 노리기 위해 국내 농가에 대한 보조금을 인상해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산 제품들은 저가 수입품, 특히 생계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저임금 개도국의 제품들보다도 낮은 가격에 시장에 나와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선 동맹국인 호주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마크 배일 무역장관은 어떻게 세계무역기구(WTO)의 주도권을 노리고 자유무역주의의 이상을 주장해 온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이 돌아서서는 보호주의를 펼치려 할 수 있냐며 비난을 하고 있다. 호주이 중심이 된 18개국의 농업 수출국 그룹은 미국 시장의 동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보호주의 추세에 대한 이 같은 비난을 완화시키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의 보호주의 성향을 공격하고 나섰다. 상원이 최근 '패스트 트랙'으로 알려진 국제무역법안에 수정을 가해, 의회가 미국의 반덤핑ㆍ반보조금 법에 거스르는 어떤 무역조항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한 것이 공격의 대상이다. 미 무역대표부 로버트 죌릭 대표는 상원의 수정안이 "절차상의 포장에 가려진 보호주의"라고 공공연한 비난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이나 무역 대상국들의 입장에선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보호주의의 곡예가 못마땅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할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이해될 수는 있을 것이다. 때문에 만일 미국이 자유무역의 전도사인 양 남들에게만 자유무역주의를 훈시하려는 태도를 조금만 완화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정치적인 부담을 동정하고 조금은 더 이해의 눈길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보다 솔직하고 믿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무역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오는 11월에는 미 의회 선거가 열린다. 이번 선거에 걸려 있는 상원 의석은 34석. 과연 내년 멕시코에서 무역라운드가 열리기 전에 미국 정치인들이 얼마만큼의 태도 변화를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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