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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한국·영국·호주 최고액권 주인공은 여성

엘리자베스 2세 가장 많이 사용… 북 유럽 여성 채택 비율 높아 <br>세계의 화폐 속 여성

영국 1파운드의 엘리자베스여왕, 영국 10파운드 나이팅게일, 이탈리아 1,000리라 몬테소리, 이스라엘 10세켈의 골다메이어(왼쪽부터)사진=화폐금융박물관 제공

영국 빅토리아 여왕, 러시아 예카테리나(사진 아래). 사진=화폐금융박물관 제공


지난 23일부터 조선 시대 여류화가이자 현모양처의 표상인 신사임당 초상이 그려진 5만원권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 도안의 소재로 그 나라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나 대표성을 지닌 인물을 내세운다. 그런 면에서 신사임당이 5만원권의 주인공으로 결정된 것은 상당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73년 1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36년만에 발행되는 최고 고액권이라는 점도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보여준다. 화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팔 때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해 주는 중요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일랑 이종상 화백은 "화폐는 문화이자 감정이 있는 유기체며, 민족의 자존심인 동시에 그 시대 문화의 척도"라고 말했을 정도다. 현재 전세계 230여개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화폐는 1,600여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여성을 도안으로 그려 넣은 화폐는 100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번 5만원권 출시를 계기로 영국,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최고액권 화폐에 여성 인물이 등장하게 됐다. 백남주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학예사는 "어느 때보다 여성 리더십이 중시되는 21세기에 외국보다는 뒤늦게 여성이 고액권의 주인공이 됐다"면서 "신사임당 선정을 둘러싸고 일부 여성단체들이 '가부장적 현모양처 이미지'라는 이유로 인물 선정에 반대하는등 논란이 있었지만 당대에 이미 화가로 인정받으며 전문적인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던 그의 모습을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는 현재 신세대 여성들이 역할 모델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2007년 신사임당을 5만원권 인물로 선정한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 중시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한편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5만원 신권의 유통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화폐 속에는 어떤 여성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봤다. ◇가장 많은 지폐에 등장하는 영국 여왕
지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1926년~현재)다. 바하마, 벨리즈, 피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와 영국령에 속하는 지브롤터, 버뮤다, 건지, 맨섬 등 20여국 30여종의 화폐에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53년부터 직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으로서 신중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영국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생존 인물인 만큼 화폐 속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가 된 현재 모습에 이르는 다양한 얼굴을 화폐에 담고 있기도 하다. 영국 5파운드(1887년, 이하 발행연도)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여왕(1819년~1901년)은 역사상 보기 드물게 60여년 동안이나 왕으로 군림한 여성이다. 그가 통치한 19세기 영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와 영국 연방을 거느리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여성도 화폐 속으로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인 골다 메이어(1898~1978년)는 이스라엘 화폐인 10세켈(1985년)에 등장한다. 이스라엘을 세우는데 앞장섰던 여성으로 원래 이름은 골디 마이어슨이지만 1956년 이스라엘의 외무장관이 되면서 유대 민족식 이름인 골다 메이어로 바꾸었다. 그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이스라엘 총리를 지냈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면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스라엘 첫번째 여성 총리이자 세계에서는 세 번째 여성 총리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 1778년 이탈리아 은화의 주인공이 된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년)는 1740년부터 1780년까지 헝가리와 보헤미아 여왕을 지낸 인물로 유럽에서 최초로 초등교육을 의무화했고 군사력과 외교력을 강화하는 데도 힘썼다. 러시아 10루블 동전(1762년)에 새겨진 예카테리아 2세(1726~1796년)는 남편인 표트르 3세가 황제로서 능력이 없다고 판단,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국력이 약했던 러시아를 세계 무대에 올려 놓은 그는 특히 정치와 교육에 힘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사회 봉사의 자취를 화폐에 남긴 그녀들
성스러운 봉사로 유명한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년)은 영국 10파운드(1975년)에 등장했다. 1853년 발발한 크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하자 나이팅게일은 30여명의 간호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가서 이들을 치료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에게 병원을 새롭게 바꾸자고 제안, 1860년 간호사 양성소를 세워 간호 교육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간호 학교가 됐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1달러 짜리 동전에도 여성의 초상이 들어 있다. 1979년에 발행한 동전에는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참정권을 주창한 사회 운동가이자 미국 근현대사를 장식한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수잔 엔서니(1820~1906년)가 얼굴을 내밀었다. 또 99년에는 서부 개척시대 탐험가들을 안내한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를 모델로 한 동전이 발행됐다. EU(유럽연합)가 단일 통화인 유로를 본격 유통시키기 이전에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990년 발행한 1,000리라 지폐 주인공을 마리아 몬테소리 여사(1870~1952년)와 그가 사랑했던 어린이들로 정해 업적을 기렸다.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이자 아동 교육가로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어린이의 집'을 열어 '몬테소리' 교육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여성 최초의 노벨수상자인 마리 퀴리 역시 유로화 도입 이전에 프랑스의 500프랑 지폐와 폴란드의 2만 즐로티 지폐에 사용됐다. ◇화폐 속에서 재탄생한 예술혼
양성 평등 정신이 보편화돼 있는 북유럽에서는 여성이 화폐 인물로 채택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스웨덴 20크로나(1992년)에서 만날 수 있는 셀마 라겔뢰프(1858~1940년)는 지난 1909년 여성 최초, 스웨덴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 '반그리스도의 기적', '지주 이야기' 등의 소설을 남겼다. 영화로도 제작돼 유명세를 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쓴 덴마크의 소설가인 카렌 블릭센(1885~1962년)은 덴마크 50크로네(2005년)에 등장, 고고하고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호주는 소모적인 남녀 차별 논쟁을 피하기 위해 지폐의 앞 뒷면에 남녀를 한 명씩 등장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10달러짜리에 시인인 메리 길모어, 100달러 짜리에 소프라노 가수인 넬리 멜바가 여성 인물로 등장했다. 일본은 5,000엔(2004년)에 메이지(明治) 시대 때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여류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桶口一葉ㆍ1872~1896년)의 초상을 넣었다.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1819~1896년)도 유로화 유통 이전에 독일 100마르크(1989년)에 등장했다. '봄의 교향곡', '사육제' 등을 작곡한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그 역시 훌륭한 작곡가였다. ◇각국의 상징과 일상을 담은 화폐들
각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여성상을 동전에 새겨 넣은 국가들도 꽤 있다. 영국 100파운드(1987년)는 영국의 상징이자 수호신인 '브리타니아 여신'을 새겨 넣었으며 스위스 2프랑(1982년)은 스위스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인 '헬베티아 여신'이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미국도 50달러(1989년) 동전에 '자유의 여신상'을 담아 건국 이념을 되새기고 있다. 프랑스는 유로화 유통 이전에 20프랑(1908년)에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인 일명 '마리안'을 동전에 넣었다. 일상 속 진솔한 삶의 향기를 담은 화폐도 있다. 나이지리아 10나이라(1979년)는 물동이를 나르는 여인, 라오스 100킴(1979년)은 낟알을 떨어내는 여인, 르완다 5,000프랑(1979년)은 커피 열매를 따는 여인을 각각 화폐에 나타내 각국의 고유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도 여성이 등장하는 화폐가 있다. 1992년 발행된 1원짜리 화폐에 가극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인 꽃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 중국도 소수 민족인 요족과 동족 소녀를 새긴 그림을 지난 1980년 1원짜리 지폐에 그려넣었다.
■ 한국 화폐 최초의 여성은?

1962년100환'모자상'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된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화폐 속 여성 인물 중 '사실상' 최초이다. 47년 전인 지난 62년 한복 차림의 젊은 어머니와 색동 저고리를 입은 어린 아들의 다정한 모습인 '모자상(母子像)'이 잠깐동안 100환짜리 화폐 도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에는 주로 대통령의 초상을 도안으로 사용하던 당시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화폐에 그려 넣은 것은 파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1960년 4ㆍ19 혁명으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화폐를 더 이상 쓸 수 없는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1960년부터 이듬해까지 세종 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1,000환권과 500환권이 새로 발행됐으나 100환권에 문제가 생겼다. 발행을 준비하던 1961년 5ㆍ16 군사 정변이 일어나면서 시기나 도안 소재 결정이 연기됐고 새로 들어선 군사 정부가 경제 개발을 장려하면서 화폐에도 저축을 장려하는 홍보 이미지를 넣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들은 조폐공사에 근무했던 여성과 그의 아들이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예금 통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을 주인공으로 '모자상'이라는 화폐가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1962년 6월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는 제3차 긴급 통화 조치가 실시되면서 모자상이 그려진 100환권은 발행 24일 만에 유통이 정지됐다. 결국 모자상이 그려진 화폐는 국내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화폐'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퇴장했다.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화폐가 유통된지 한달도 안돼 사라졌으니 신사임당은 실제로는 최초의 화폐 속 여성이 아니지만 최초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공식 통용 화폐가 아닌 기념 주화에는 역사속 여성들이 등장한 적이 있다. 1970년에는 2,500원짜리 동전에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여왕인 선덕여왕이 등장했으며 같은 해 50원짜리 동전에는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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