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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월, 한겨울 칼바람은 유독 차갑고 매서웠다. 마치 '그'가 마주할 험난한 과제를 예고하듯. 공연예술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0년, 예술경영인 1세대로 '극장의 달인'이라는 명성까지 얻은 그였지만 이번에 만난 상대는 쉽지 않았다. 60년 넘게 자생력을 잃고 표류해온 국립극장. '고리타분하다'는 관객들의 선입견과 외면, 극장 내부에 팽배한 우울함은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대놓고 임기 동안 정원의 잔디와 나무나 관리하다 떠나라고 하더군요. 취임 한 달간 잠도 안 오고 내가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로부터 2년8개월이 흐른 지금, 국립극장은 '공연예술의 남산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전에 없던 활기를 띠고 있다. 1950년 창설 후 60여년간 국립극장을 뒤덮었던 침체의 냉기를 걷어내고 변화의 씨앗을 뿌린 안호상(사진) 국립극장장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국립극장의 변화는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로 임기 3년째인 그는 극장장 취임 후 중간평가를 부탁하자 이같이 답했다. 2012년 1월 취임한 안 극장장은 최초 2년 임기를 마친 뒤 지난해 1년 연장계약을 할 정도로 국립극장의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어깨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만큼 극장 전문가 안호상이 기대하는 국립극장의 역할과 무게는 남다르다.
◇국립극장의 기본 찾기, 시즌제 정착=안 극장장이 지난 2년8개월간 일군 대표 성과는 뭐니 뭐니 해도 국립극장의 '레퍼토리 시즌제 정착'이다. 레퍼토리 시즌제는 매년 8월 말에서 이듬해 6월까지 국립극장 무대에 오를 공연 프로그램을 미리 공개한 뒤 티켓을 판매하는 것으로 모든 작품은 국립극장 상주 예술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예술단체인 국립극단·국립발레단·국립현대무용단이 참여하는 기획공연으로 진행된다. 2012년(2012~2013시즌) 처음 시작한 시즌제는 올해(2014~2015시즌)로 3회를 맞았다. "상주 예술단체를 가진 외국 국립극장들은 자체 레퍼토리를 갖고 프로그램을 돌리는 게 기본이에요. 한국의 경우 초창기엔 1년 내내 공연할 만큼의 배우나 작품, 예산이 여의치 않았던데다 갈수록 민간 예술단체나 해외 공연물을 들여오는 대관공연 위주로 공연이 이뤄지다 보니 국립극장 자체 예술단체의 공연은 갈수록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됐어요. 그렇게 60여년의 시간이 흐르며 기본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 거죠."
안 극장장은 4개 국립예술단체 중심의 공연으로 극장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이 국립극장의 기본이고 이 기본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극장장으로서 본인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국립극장 내 예술단체가 위상을 유지하려면 관객들로부터 '국가에 하나밖에 없는 극장의 하나밖에 없는 단체'라는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취임 후 단원들을 만나며 '국립극장 단원으로 들어올 정도면 당대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건데 왜 지금은 고리타분한 예술단체의 단원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직설도 날리면서 국립예술가다운 모습을 보여주자고 강조했어요."
◇외부의 반향을 이끌어낸 내부의 변화=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안 극장장의 시즌제에 관심을 보였고 1년 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예술단체당 한두 개였던 한 해 공연 작품 수는 시즌제가 시작되며 7~8개로 늘어났다. 자연스레 업무 로드가 늘어나고 체력적인 강행군도 이어졌지만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두번째 시즌 기자간담회에서 안 극장장이 "가장 큰 변화는 단원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내부의 변화는 외부의 반향을 이끌어냈다. 두번째 시즌(2013~2014)의 연극 '단테의 신곡'은 7회 공연 전 석 매진을 기록했고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18금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극장 콘텐츠 사상 첫 장기공연에 성공했다. 특히 국립창극단은 스릴러 창극, 19금 창극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이 강한 창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립무용단의 성과도 눈부시다. 지난해 국내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는 내년 칸 댄스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묵향 역시 프랑스 4개 도시 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고정관객 발굴은 여전한 과제=임기 말, 이 정도 성과면 만족할 법도 하지만 안 극장장은 오히려 걱정이 크다고 말한다. 시즌제 시작 전보다 관객층이 두터워졌지만 여전히 유료티켓 점유율은 3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 그는 "외국 국립극장의 시즌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덕에 극장에서 연간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하면 일찌감치 관객들이 티켓 예매에 나서고 시즌 예매의 20~30%는 고정관객층이 소화한다"며 "국립극장 시즌제도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고정관객층이 얇은 게 한계"라고 설명했다. 제아무리 좋은 공연도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게 안 극장장의 생각이다. "과거 1년에 1~2회 공연할 때야 알음알음 티켓을 판매해 어떻게든 객석을 채웠지만 레퍼토리 시즌제에선 그런 게 불가능해요. 시즌제를 처음 시작할 때 '5년 안에 유료관객 50%, 사전 판매율 30%'를 달성하면 성공이라고 판단했는데 지금의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즌제가 뿌리를 더 깊게 내려 지금 같은 흐름을 이어가느냐가 관건이겠죠."
◇문화 문외한서 극장의 달인으로=지금이야 성공한 '1세대 예술경영인'이자 '극장의 달인'이지만 안 극장장은 대학 졸업 때까지 공연과는 담을 쌓고 사는 '문화 문외한'이었다. 전공도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정치외교학이었다. 본인도 "학창 시절 마음먹고 한 문화생활이라곤 대학 탈춤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이마저도 가입 후 두 달간 데모만 하다 나와 별 소득이 없었지만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취업 게시판에 붙은 예술의전당 예술행정요원 모집공고를 만나며 공연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엔 예술의전당 명칭도 없었어요. 그냥 '아시아 최초 복합예술센터를 만드는 데 함께 일할 예술행정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죠. 어린 시절 꿈이 건축가였는데 공연보다는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무작정 지원을 했죠."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한 안 극장장은 "건립이 완료될 때까지만 다니자"는 생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예술의전당이 외형상 제 모습을 갖추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한동안 품 안에 사표를 넣고 다녔어요. 그런데 7~8년이 지나니 엄청난 규모의 땅을 파헤쳐놓은 상태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군요. 건물이 완공된 후엔 자기 재능을 남들과 어떻게 공유해야 할지 모르는 예술가들을 보며 그들에게 파트너가 돼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안 극장장은 1990년 당시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4년에 걸쳐 공연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중가수 조용필의 콘서트를 열어 대박을 쳤다. 모두 남들이 '안 된다'고 뜯어말렸던 기획이다. "계속할 생각이 없었던" 첫 직장, 그는 24년이라는 세월을 그곳과 함께했다.
◇후학 양성, 예술인 매니지먼트 관심=예술의전당과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국립극장을 거치며 30년 넘게 예술가들의 파트너로 살아온 안 극장장. 그는 기회가 된다면 예술 관련 학교를 세워 공연 기획과 극장 경영교육에 앞장서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후학 양성과 함께 순수 예술가를 지원하는 매니지먼트에도 관심이 있다. "실력 있는 예술가들은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러 예술적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을 관리하고 컨설팅해주는 존재가 필요하지만 당장 경제성이 낮아 매니지먼트사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공공 부문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런 쪽으로 제 역할을 확장해보고 싶어요. 예술가들과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게 예술경영인이 할 일일 테니까요." 예술경영인 1세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그렇게 새 길을 구상하고 개척하며 선례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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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워진 시즌 프로그램 기대하세요" 창극 춘향가… 록으로 풀어낸 시나위… 국립무용단 신작 토너먼트… |
·사진=이호재기자